< 이 시리즈에 포함하려고 재 연재 합니다 >
오늘은 북한산을 종주한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 햇빛 예보지만 아직 안개와 구름 탓에 기온이 낮아 몸이 으스스하다. 옷을 켜 입지 못해 후회되지만 그냥 출발했다. 산행하면 체온이 올라갈 것이다. 도곡역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구파발에서 내린 다음 버스로 북한산성까지 총 한 시간 반 걸린다.
출발 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로 갈등이 일었다. 따뜻하고 편안한 집을 나 두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왜 사서 고생하지 라는 생각이 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갈등은 편안하려는 육체의 속임수일 뿐이다. 이런 속임수에 당하면 방안퉁수가 된다.
의상봉 입구
의상봉 올라가는 입구는 아늑한 오솔길이다. 등산로에 솔잎과 갈참나무 낙엽이 떨어져 있고, 사이사이 흙과 화강암이 잘 조화되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산입구에 들어서자 육체의 장기와 피부는 신선한 기운을 맞으며 생기를 찾는다.
영국의 숲 전문가 맥스 애덤스의 나무의 모험이라는 책을 읽어서 인지 나무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모처럼 좋은 책을 읽었다.
북한산은 화강암 바위가 들어선 후 남은 좁은 땅에 건강하고 무성한 토종 소나무가 꿋꿋하게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산 중턱 까지는 갈참나무도 섞여 있지만 북한산은 소나무가 주종이다.
나무는 잎 표면에 엽록체의 작은 구멍들로 태양빛을 흡수하고 잎 뒷면에 기공을 통해서 탄소를, 또 뿌리를 통해 수소를 흡수하며 당을 생산해서 열매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산소가 생산된다. 생명의 발전소다.
겨울은 햇빛이 줄어들고 활엽수들은 생산을 멈춘다. 따라서 가을 나무는 낭비를 줄이기 위해 자신이 만든 이파리를 가차 없이 떨어뜨린다. 엊그제 내린 비로 나뭇잎은 촉촉이 젖어 물기를 머금고 있다.
오늘 산행의 목적은 북한산을 천천히 느끼는 것이다. 느리게 움직이며 모든 센스를 활짝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물과 움직임을 그냥 바라보고 듣고 느끼려 한다.
삶과 죽음, 시련과 도전, 순간과 영원이 함께하는 자연을 품고자 한다.
모든 생명체의 복잡한 과정의 목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종족번식이다. 종족번식의 기본은 죽음과 탄생의 반복이다.
죽음 같은 겨울이지만 자세히 보면 봄을 위한 시작이 있다.
의상봉 능선길 - 난 코수
의상봉에서 출발하여 대남문까지의 능선코스는 등산 초보자에게는 난코스다.
등산 입구를 지나 30분 오솔길을 오르면 가파른 바위길이 이어진다.
초보 딱지를 떼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용기를 내어 도전해야 한다. 등산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난코스가 주는 스릴과 멋진 전망을 맛볼 수 있다. 자신감 상승은 보너스다.
십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위험한 코스로 산악 사고가 종종 일어났지만, 지금은 바위 능선 곳곳에 난간과 우회도로가 있어 힘은 들지만 크게 위험하지 않다.
첫 번째 바위 능선을 오르자 시야가 뚝 트인다. 북한산에만 햇빛이 가득하고 사방팔방이 두꺼운 구름의 바다다.
해저포함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하와이 마우나케아 산 위에서 바라본 운무처럼 두꺼운 구름이 서울의 삶을 덮는다.
주변의 산등성이도 운무의 바다에 떠있는 듯하다.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지구 마지막 날 홍수가 도시를 집어삼키고 제일 높은 이곳 북한산만 물 위에 떠있는 듯하다.
깊은숨을 토한 후 시야를 멀리하며 사방팔방을 본다. 저 멀리 구름의 망망대해에 산봉우리 몇 개가 무인도처럼 떠 있고 장대한 구름은 영원히 지상을 덮을 기세다.
의상 능선 길은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와 중턱의 화강암 바위를 전시장처럼 보여주는 최고의 전망길이다. 온 천지가 경이로운 풍경이다.
어린아이 피부처럼 고운 흰 화강암 급경사면에 햇빛이 부딪쳐 반짝인다. 그 가파른 경사면을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오므라지고 오금이 저려 얼른 고개를 돌려, 다음 오를 곳만 본다.
바위틈 사이를 비집고 자란 앉은뱅이 소나무가 서로 한 뼘 밖에 남지 않는 흙을 붙들고 긴긴 세월 비바람 맞으며 생존한다.
하지만 생존을 너머 지구 엔트로피에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대부분 인간은 지구의 적이지만 나무는 지구를 지킨다.
비틀어지고 떨어져 나간 상처 구멍을 비집고 나온 작은 괭이는 숨이 가쁜 산꾼에게 수없이 잡혀 니스를 바른 듯 윤기가 난다.
바위와 난간을 붙잡고 급경사를 오르다 보면 십중팔구 엉덩이 곡선을 뒤 따라오는 사람에게 그대로 노출할 수밖에 없다. 젊은 여성이 앞에 오르는 남성 동료를 향하여 셔터를 누르며 말한다. 엉덩이 살아있네.
젊음은 축복이다. 뭘 해도 보기 좋다.
그녀의 섹시한 위트가 피로를 날린다.
의상봉 정상
산에 오르면 신체가 구석구석 살아난다. 특히 가파른 암릉 구간에는 살아 나는 강도가 높다.
해발 508M 의상봉에 올랐다. 영원히 머무를 듯한 두꺼운 구름도 서서히 햇빛에 밀려나가고 감추어진 산의 위용이 드러난다.
산의 햇살이 가득한 동쪽은 저기압에서 땅으로 기어 사라지는 연기처럼 구름이 아래로 미끄러지고 왼편 서북 편에는 북한산 정상인 삼각의 화강암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솟구쳐 있다.
북한산 상층부는 화강암 덩어리다. 백운대 인수봉 노적봉이 각각 거대한 하나의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진 듯하다.
마치 신화 속 헤라클레스가 땅을 뚫고 솟구친 듯한 형상이다. 웅장한 화강암 봉우리 곳곳에 소나무가 뿌리내려, 살아 있는 전설처럼 보인다.
의상봉에서 대남문 가는 코스는 설악산 공룡 능선 축소판 같다. 오른쪽은 비봉능선 왼쪽에는 삼각의 경관이 힘든 허벅지와 종아리를 위로하고 심장과 허파에 쉴 틈을 준다.
몸은 힘들어도 끝없이 이어지는 암 봉과 계곡 사이로 군데군데 남아있는 단풍의 파노라마가 코와 눈 끝을 통해 전신에 흐른다.
쉬는 날은 무조건 산에 오를 일이다. 아침에 미련을 두었던 방안퉁수 연민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태초의 원시적 아늑함과 평화와 기쁨이 내면에 들어왔다.
북한산성 근처에 아담한 집을 짓고 매일 이곳에 오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일지만 이것도 욕심이다. 서울에 살면서 여기에 올 수 있다는 것 만도 감사할 일이다. 자주 오르는 동네 뒷산 구룡산, 청계산에게 미안하지만 산타는 재미는 북한산이 최고다.
북한산에는 절이 약 40개 정도 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만도 벌써 5개다.
한국의 모든 부가 서울에 모여 있으니 서울의 산, 북한산에 사찰이 많이 있는 것도 당연하지만, 산세의 신비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명산이 있고 큰 강이 흐르면서 천만 이상 인구가 살고 있는 전 세계 유일한 도시가 서울이라고 하니, 서울 사는 것 만도 감사할 일이다.
인근에 절이 있어 목탁소리가 나무와 바위와 산꾼들에 부딪친다.
화려한 시간을 뒤로하고 아직 매달려 있는 시든 단풍잎을 따서 앞뒤를 본다. 나뭇잎은 갈고리처럼 앞면으로 휘어져 힘줄이 하얗게 드러났다. 9개 세로줄과 불규칙적인 옆줄이 보인다. 이 배열은 무슨 역학일까? 자연은 아무리 하찮아도 자세히 보면 놀랍고 신비롭다.
문수봉 정상에서
문수봉 절벽 위 바위 끝에 앉는다.
앞에는 문수사가 있고 문수사 건너편은 경사가 가파른 보현봉이 있다. 보현봉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오른쪽에는 자주 올랐던 비봉과 사모 바위 저 멀리 향로봉이 보인다.
보현봉과 문수사 아래 등산로가 풀어진 실처럼 구불구불 아래로 흐른다. 북한산 등산로 중 가장 평탄해서 가족 등산로로 잘 알려진 길이다. 대남문까지 올라오는 길은 계속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라 전망이 없다. 전망을 보려면 조금 더 참고 경사진 문수봉까지 와야 한다. 마지막 1프로의 노력이 백 프로의 보상을 준다.
문수봉 바위에 좌선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코 끝에 스치는 서늘한 공기와 이마에 부딪치는 햇빛의 온기를 정성 들여 받는다. 두 손에 엽록체가 있어 햇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무릎 위에 두 손을 펴고 순수한 시간을 연다.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순간이다.
따뜻한 온기에 힘입어 대남문에서 맨발이 되었다. 양말을 등산화에 넣고 등산화를 배낭 가망에 매달았다. 드디어 맨발로 북한산을 느낀다.
맨발은 환성을 지른다. 온몸에 차원을 넘는 자유가 넘친다. 대남문에서 백운대로 가는 대부분은 우측에 산성 성곽을 옆에 끼고 걷는다.
북한산성에는 왕의 행궁지가 있다. 하지만 왕이 이곳을 이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북쪽에서 오면 남쪽으로, 남쪽에서 오면 북쪽으로 피난 갔다.
고달픈 것은 성을 짓고
관리하며 피난을 가지 못한 백성이다.
왕정이 무너졌고 지금은 무수한 백성이 성곽 위에 우뚝 서서 궁궐을 발아래로 내려본다.
백운대는 아무리 봐도 압권이다.
바위가 거대한 산이다. 화강암 재질의 삼각 로봇이 신과의 전쟁 중 땅 속에서 솟아난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바위를 타는 까마귀는 한 점으로 보인다.
바위 중간 소나무를 쳐다본 것 만도 아찔하다. 백운대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위험해서 겁이 많은 사람은 포기한다. 하지만 도전해서 정상에 오르면 심장이 강해지는 보상을 받는다.
백운대 정상
나는 무조건 정상까지 간다.
백운대 정상에 올라야 세상 풍파를 헤칠 수 있는 기운을 얻을 수 있다.
마당 바위는 정상을 정복한 산꾼에게 최고의 보상 공간이다. 부드럽고 평탄한 바위에 사람들의 미소가 가득하다.
산은 항상 내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절절하게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