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발전하는데, 인간은 왜 불안해지는가?

Part1. AI 시대 왜 기업을 다시 묻기 시작했는가?

by 한재영 신피질

최근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번아웃, 만성 스트레스와 연관된 질환이 사회 전반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이 현상은 특정 계층이나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다.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학생·직장인·자영업자·은퇴자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 정도의 확산이라면, 원인은 개인의 취약성이 아니라 시대 자체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조건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로버트 사폴스키의 『왜 얼룩말은 궤양에 걸리지 않는가』는 여전히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 사폴스키에 따르면 얼룩말 역시 사자와 같은 포식자를 만나면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심박수는 치솟고, 혈압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격히 증가한다. 그러나 사자가 사라지는 순간, 얼룩말의 몸은 빠르게 정상 상태로 돌아간다. 스트레스는 짧고, 명확하며, 끝이 있다.


인간의 스트레스는 전혀 다르다. 인간은 사자가 없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사자를 상상할 수 있는 뇌를 갖게 되었다. 불안은 먼저 감각의 영역에서 시작된다. 위협 신호는 편도체를 활성화시키고, 감각 피질을 거쳐 전전두엽으로 전달된다. 여기서 인간의 불안은 질적으로 다른 단계로 넘어간다.


전전두엽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핵심 영역이다. 이곳에서 인간은 과거를 재구성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비교한다. 문제는 기술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이 전전두엽의 기본 기능인 미래 예측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직업의 지속성·사회적 위치·소득 구조·자식 세대의 미래까지 어느 것 하나 안정적으로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전전두엽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반복하지만, 확신을 얻지 못한다. 이 예측 실패의 누적이 바로 만성 불안이다.


모든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생존과 종족 보존을 목표로 진화해 왔다. 인간 역시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은 여기에 강력한 미래 예측 능력을 더한 존재다. 이 능력은 생존에 유리했지만,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된다. 미래를 예측해야 살아남는 존재가,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대 사회 특유의 구조가 겹친다. 과거 인간에게 생존이란 주로 먹을 것을 확보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생존은 훨씬 복잡해졌다.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통신비, 보험료, 노후 대비 비용 등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비용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월급제 사회에서는 생존이 매달 재검증되고, 일용직이나 프리랜서의 경우 그 검증은 더 잦다. 생존은 더 이상 단일 사건이 아니라, 항상 유지되어야 하는 조건이 된다. 이 구조는 인간의 신경계를 상시적인 경계 상태에 놓는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불안이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모든 계층으로 확산된다는 사실이다. 하위 계층은 생존 자체를 걱정하고, 중산층은 하락 가능성을 두려워하며, 상위 계층조차 지위 상실과 경쟁에서의 탈락을 불안해한다. 기술 발전은 모두의 삶을 바꾸지만, 그 결과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불안은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정서가 된다.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이 항상 불안을 증폭시킨 것은 아니다. 기술의 성과가 사회적 부로 전환되고, 공공의 영역에서 안전판 역할을 했던 시기에는 불안이 상대적으로 완화되었다. 안정된 고용, 의료와 교육에 대한 접근성, 사회적 안전망은 미래 불확실성을 흡수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이러한 안전판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술 변화의 충격이 사회적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개인에게 전가될수록 불안은 더욱 심화된다.


인간은 단순히 살아남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찾는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타인에게 인식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인할 때 삶의 의미를 느낀다. 그러나 기술 문명은 인간을 점점 관계적 존재가 아니라 생산 수단의 일부로 환원해 왔다. 성과와 효율이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서, 타인과의 관계는 소외되고 개인은 고립된다.


한나 아렌트는 기술 발전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이 의미를 느끼기 어려운 사회로 이행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인이 거대한 기술 문명을 통제할 수 없고, 스스로를 대체 가능한 부품처럼 느낄 때, 불안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의 붕괴, 하르트무트 로자가 말한 공명의 상실 역시 이 맥락에 놓여 있다. 인간은 여전히 사회적 존재이지만, 그 사회적 연결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만성 불안은 개인의 건강과 사회 전반에 실질적인 문제를 만들어낸다. 면역 기능 저하, 심혈관 질환, 수면 장애, 우울과 불안의 만성화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는 공격성 증가, 혐오와 분열, 극단적 선택, 공동체 신뢰의 붕괴로 이어진다. 불안은 개인의 마음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의 병리로 확장된다.


결국 오늘날의 불안은 생물학적 뿌리를 가진 감정이지만, 그 형태는 시대마다 달라져 왔다. 포식자와 흉년이 불안의 중심이던 시대가 있었고, 지금은 기술 발전 속도, 사회적 안전성의 약화, 그리고 의미 상실이 불안의 핵심 축이 되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그 속도를 사회가 인간에게 그대로 떠넘길 때 불안은 구조화된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발전이 인간의 예측 능력과 의미 추구 구조를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가이다. 얼룩말이 궤양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가 끝날 줄 알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불안이 끝날 수 있는 사회적 안전판과, 다시 의미를 회복할 수 있는 관계의 공간인지도 모른다.


기술이 발전하는데 인간이 불안해지는 이유는, 기술이 인간을 위협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기술의 속도를 인간의 신경계와 삶의 구조에 맞게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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