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뽑은 뒤 잡생각들~

by 한재영 신피질

지난주 목요일 치과 치료를 받았다. 약 세 시간 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어금니를 뽑았고, 그 옆의 옆으로 누운 사랑니가 쉽게 빠지지 않아 의사가 잘게 쪼개어 하나씩 꺼냈다. 그 과정에서 생살도 찢었다. 마취를 계속했지만 신경을 건드렸는지 매우 아팠다. 원장님도 처음에는 30분~40분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던 듯하다.


두 시간이 넘자 몹시 힘들어졌고, 온갖 집중을 하며 내 신체를 정신과 분리시키려 했지만 육체의 고통 앞에서 자꾸 흔들렸다. 마취를 했음에도 이 두 개를 뽑는 데 이런 고통이 따르는데, 마취제가 없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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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수련, 특히 불교의 깨달음이라 해도 육체적 고통 앞에서는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단종의 복원 시도를 하다 실패해서 온갖 고문을 당했던 성삼문이 생각났다. 그 모진 고문을 견디고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은 그런 정신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 뒤로 거의 닷새 동안 치통이 계속되었고 머리도 약간 아픈 듯하여 정신적으로 집중이 되지 않았고 적극적인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낮잠을 자지 않던 내가 낮잠을 자기도 했고, 운동도 가끔 쉬었으며 오후에 가던 산에도 가지 못했다.


이런 경험이 앞으로 더 나이가 들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더 악화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깊은 정신적 수련을 한 것도 아니고, 얄팍한 지식만으로 육체의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육체의 고통이 생각보다 삶의 적극성을 크게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느꼈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의지가 약해서 이런 일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한 가지 생각이 점점 또렷해졌다.

세상은 무언가를 반드시 달성해야만 의미가 생기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세상은 이미 모든 것이 완전하며, 나와 세상의 연결 또한 매 순간 완성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관악산에 올랐을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정상을 오르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매 순간의 과정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느껴지고,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와 각오는 곧 지금 이 순간이 힘들다는 전제를 내포한다. 결국 현재는 결핍된 시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매 순간이 이미 완성된 순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 이 호흡, 지금의 발걸음, 지금 내 몸을 이루는 원자와 분자와 세포들의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까지도 온 우주의 질서 속에서 완벽하게 조화된 하나의 모습이라면, 더 이상 극복해야 할 것도 이루어야 할 것도 남지 않는다. 그 순간 자체가 완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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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그런 상태를 자주 느낀다. 체육관 트랙을 달리고 있을 때도, 몇 바퀴를 더 돌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지금 돌고 있는 이 순간 자체가 완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완벽한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뛰고 있는 상태조차도 기쁨과 만족으로 다가온다.


치통을 느끼는 순간조차 완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포와 세포가 서로 조합을 이루며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하나의 작동 과정일 뿐이라면, 내가 의식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그 상태를 관조하고 그 완전함을 느끼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AI 시대에 기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사유하다가, 인간의 삶 또한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호숫가로 들어가 문명과 거리를 두는 삶, 전 재산을 내려놓고 농촌으로 들어간 톨스토이의 삶, 평생의 소득을 장학사업 등 사회에 환원하며 살았던 김장하의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 한국 사회에서 돈으로 평가되는 가치에서 조금 벗어나 문명과 사회 속에 머물면서도 사회적 가치와 개인적 취향을 함께 지켜가는 삶의 방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굳이 현재의 생활을 떠나지 않더라도, 일상의 삶 자체를 온전히 완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검소하게 살면서 자연의 가치를 더 깊이 느끼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더 많은 성취를 이루기보다 지금 주어진 하루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도 충분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완전해지려 애쓰는 삶보다, 이미 완전한 이 순간을 알아보는 일이 더 깊은 세계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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