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청계산 이수봉 산행이다. 몸이 힘들어 회복이 필요할 때 나는 청계산 이수봉을 찾는다. 청계산 이수봉은 조선 연산군 4년 무오사화 때 정여창이 이곳에서 두 번이나 몸을 피해 화를 면했다고 한다. 옛골(상적동) 마을 사람들이 이수봉 정상에 세운 비석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밤사이 계곡 근처 기온은 영하로 내려갔고, 땅에는 아직 찬 기운이 가득하다. 산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산행을 시작한다. 햇빛이 들지 않는 응달 지역의 차디찬 흙과 매트를 맨발로 밟는다. 발바닥 끝을 스치는 예리한 차가움이 전신에 소름을 일으킨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길은 구불구불 이어진다. 이곳은 아주 추운 겨울에도 물이 완전히 얼지 않는 경우가 많아, 계곡물은 늘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차갑지만 가끔씩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한다.
햇빛이 계곡물에 비치며 눈부신 빛이 물 위에서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물은 너무도 맑아 물속에 떨어진 낙엽의 가는 줄기까지 또렷하게 보이고, 그 사이사이 모래와 자갈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참을 올라오니 물고기 몇 마리가 물속에 있다. 저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생명은 참으로 경이롭다.
어디선가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내 앞에서 빙그레 돌더니 금세 쏜살같이 사라진다. 응달진 계곡물 속에는 둥그런 하얀 해가 떠 있고, 계곡 옆 우거진 나무들은 그 옆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워 마치 동양의 수묵화를 만들어낸다. 마치 달밤에 비친 나무와 계곡의 모습 같다.
습기가 많아 바위와 고목 밑둥, 나무 계단 모두에 청록색 이끼가 가득 끼어 있다. 계곡 주변에는 밤나무가 있어 지난겨울 떨어진 밤송이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발바닥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계곡물 소리는 자연이 만든 가장 청아한 음악이다. 전파의 매개 없이 그대로 귀로 스며든다. 한참 동안 계곡물 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면, 내가 마치 소리의 세계로 풍덩 빠져 청계산의 물이 내 몸속을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구불구불한 물길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가는 쫄쫄거림까지, 이 계곡은 언제 와도 물소리가 좋다.
차가운 땅을 걷다가 낙엽이 두텁게 쌓인 곳을 지나면 훈훈한 기운이 올라온다. 마치 추운 날 꽁꽁 언 발을 따뜻한 이불 속에 넣는 듯한 포근함이 느껴진다. 계곡의 응달진 곳에는 마치 빙하의 흔적처럼 아직 녹지 않은 눈이 하얗게 이불처럼 덮여 있다. 왜 봄이 되면 산꼭대기에 호수도 없는데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일까. 지금 계곡에 흐르는 물은 땅속에 얼어 있던 얼음이 봄의 온기로 서서히 녹아내린 것일 것이다.
산길에는 지난가을 다람쥐가 흘리고 간 듯한 밤톨 하나가 보인다. 갈색 깃털의 딱따구리가 나무 사이를 수평으로 선을 그으듯 날아간다. 잣나무는 곧은 줄기를 하늘로 뻗는다.
계곡길이 끝나고 깔딱고개가 나타난다. 가파른 계단길이다. 오늘은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오른다. 계단을 오르자 허벅지가 금세 힘들어한다. 매일 근력운동을 하고 달리기를 하며 구룡산을 자주 오르지만, 가파른 계단길은 언제나 쉽지 않다. 경사가 지면 내 몸무게 65킬로를 한 발로 버텨야 한다. 그러니 사실 내 발과 허벅지는 지금 강도 높은 근력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잎은 떨어지고 가지만 남은 나무들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무들의 골격 구조는 모두 유사한 구조이다.
오늘은 온화한 햇빛이 사방에 가득하다. 이 햇빛이 따뜻한 봄기운을 가져온다. 지난 겨울 얼어붙었던 땅을 녹이고, 닫혀 있던 기공을 열어 부드러워진 흙 속에서 새로운 싹들이 나오도록 한다. 겨울잠을 자던 작은 곤충들도 깨어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아직은 낙엽들이 땅 위를 가득 덮고 있다. 나무와 풀들은 잎을 만들고, 겨울이 오면 그 잎을 떨구어 땅을 덮는다. 그 잎들이 썩어 뿌리의 자양분이 되고, 다시 그 힘으로 새로운 잎을 만들어낸다. 나무는 생명을 순환시키는 공장이다.
깔딱고개를 넘으면 금강송이 우거진 산길이 나타난다. 금강송의 줄기는 우아하고 고상하다. 황토색의 곧은 줄기가 높이 솟아 있고, 그 위에는 푸른 솔잎과 솔방울이 가득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저절로 허리와 가슴이 펴지고, 움츠러들었던 장기들이 생기를 되찾는 듯하다. 최고의 힐링 시간이다. 에너지는 고양되고 정신은 맑아진다.
이수봉 정상 100미터 전에서 잠시 멈춰 물을 마시며 쉰다. 작은 참새 한 마리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닌다. 저렇게 작아 보이지만 공룡의 후손이라고 한다. 6,600만 년 전 소행성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충돌했을 때 대부분의 공룡은 사라졌지만, 따뜻한 깃털을 지닌 작은 공룡들은 살아남았고, 오늘날 새들이 그들의 후손이 되었다.
최근 넷플릭스 공룡 시리즈를 흥미롭게 보았다.
결국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 환경의 변화인 듯하다. 수많은 공룡 종들이 2억 년 동안 수없이 변화했고, 지금은 새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의 주인이 되었다.
이수봉 정상이다. 온화한 햇빛 아래에서 물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최근 자주 읽고 있는 오쇼 라즈니시의 『요가의 길』 내용이 떠오른다.
감각적 즐거움은 일시적이고 금방 사라진다. 감각적 즐거움에 의존하면 결국 끝없이 외부 자극을 찾게 된다. 맛있는 음식, 섹스, 술, 담배와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내면에서 비롯된다. 본질적인 행복의 근원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자주 느끼고 바라보아야 한다.
외부 자극은 이미 존재하는 행복의 원천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외부 자극이 없어도 행복의 근원이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감각적 즐거움을 찾아 끊임없이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다. 감각적 즐거움이라는 금을 양손에 쥐고 있어도, 내면에 다이아몬드 같은 행복의 근원이 있음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금을 내려놓게 된다.
결국 감각적 즐거움을 억지로 끊기 위해 싸울 필요는 없다. 내면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면, 감각적 즐거움은 저절로 의미를 잃는다. 담배나 커피, 술을 끊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담배 피우고 싶을 때 물을 마시면 된다. 물의 가치를 진정으로 느끼고 즐긴다면, 우리는 기쁘게 물을 선택하게 된다.
무언가를 멈추고 변화하려 할 때, 자신과 싸울 필요는 없다. 새로운 가치를 내면 깊이 받아들이면, 과거의 습관은 자연스럽게 시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