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산길에서

by 한재영 신피질

3월 중순이다.
그래도 아침 공기는 아직 겨울에 가깝다.

기온은 0도 언저리이고 낮에도 9도쯤 된다. 햇빛은 여전히 힘이 약하다. 도시의 미세먼지를 뚫고 내려오는 빛도 어딘가 차갑다. 아직 봄의 햇살이라기보다는 겨울의 남은 숨결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강남 힐링로드의 흙길은 조금씩 풀리고 있다.
한겨울에는 꽁꽁 얼어 단단했던 땅이 이제는 부드럽다.

흙은 발밑에서 잘게 부서지고, 곳곳에는 물기를 머금은 진탕길도 보인다.


맨발로 흙길을 밟으면 발바닥이 먼저 차가움을 느낀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산뜻한 감촉이 몸으로 퍼진다. 겨울이 끝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겨울산책.png


겨울 칼바람을 피해 잠시 자리를 옮겼던 까마귀들도 다시 돌아왔다.
비워 두었던 높은 소나무와 아파트 주변을 맴돌며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던 주인인 듯한 태도를 보인다.

까마귀가 아파트 근처에 모이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고 한다.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높고 가파른 구조가 절벽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 산은 발가벗은 모습이다.

소나무와 이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식물들은 잔가지만 남겨 둔 채 겨울을 버티고 있다. 그래서 산은 휑하다. 사방이 훤히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이 나무가 겨울을 견디는 방식이다.

나무가 잎을 떨구지 않는다면 억센 북풍에 가지들이 꺾여 나갈 것이다. 얼어붙은 땅에서 물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결국 줄기째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무는 겨울이 오면 스스로를 비운다.

잎을 내려놓고 가벼워지고
그렇게 겨울을 버틴다.


사람의 삶도 비슷한 것 같다.

어려운 때에 욕심을 붙잡고 있으면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삶이 버티지 못한다.

그러니 비워야 한다. 나무처럼.


산길을 걷다 보니 70대쯤 되어 보이는 두 분이 나무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줄기가 희게 보이는 나무였다.

“자작나무인가?”

그러나 가까이 보니 자작나무처럼 곧게 뻗은 나무는 아니었다. 굵은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내가 지나가자 그분들이 나에게 물었다.

“이거 자작나무 맞나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인해 보니 황백나무였다.


예전에 글을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꽃이나 나무를 ‘나무’ ‘꽃’ 같은 보통명사로만 쓰면 성의 없는 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했다.

세상에 있는 꽃과 나무 이름을 다 외워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다르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면 이름이 금세 나온다. 인공지능이 그 일을 대신해 준다.


그래도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지나치게 알려고 하면 산책의 즐거움이 줄어든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보고, 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가면 된다.


오늘 나는 산길을 걷는다.

일부러 뾰족한 돌을 밟아 보기도 한다. 나무 계단의 모서리를 발바닥으로 눌러보기도 한다. 고슬고슬한 흙을 밟고, 길 위에 떨어진 솔잎을 사각거리며 지나간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생각보다 강하다.
그 작은 자극들이 머릿속을 맑게 만든다.


삶을 욕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에는 고수들이 참 많다.

나는 가끔 모차르트를 바라보며 자신의 재능을 한탄하던 살리에르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 대학 동창 몇 명과 함께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며 러닝 코치를 불러 한강에서 연습을 했다.

그 코치는 마라톤을 거의 300번이나 뛰었다고 했다. 기록도 2시간 30분 정도라고 한다. 겉모습은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았지만 그 기록은 상상을 넘는다.

나는 아직 풀코스를 한 번도 뛰어 본 적이 없다. 마라톤 대회에도 나가 본 적이 없다.


그래도 40대 초반에는 거의 매일 한강변을 달렸다.

구의동에서 출발해 올림픽대교, 잠실철교, 잠실대교, 청담대교를 왕복으로 달렸다.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달렸고 눈이 오면 스키복을 입고 달렸다. 밤 11시에도 달렸고 자정이 넘어서도 달렸다. 술을 마신 날에도 달렸다. 한겨울 미끄러운 강변을 따라 성산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 돌아오는 길에는 거의 걸어온 기억이 난다.


어디를 가나 고수들이 많다.

피트니스 센터에서도 나는 겨우 60킬로그램을 드는데 옆에서는 200킬로그램을 들어 올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턱걸이를 간신히 10개 하는데, 30개를 쉬지 않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온몸이 무쇠와 같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연습해도 드라이버 비거리 200미터인데, 가볍게 230미터 이상을 치는 사람이 많다.


며칠 전부터 미국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솔 벨로의 『험볼트의 선물』**을 읽고 있다.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작가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방대한 독서와 기억력,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 거기에 해학과 위트, 그리고 언어의 곡예까지.

그에 비하면 내가 글을 쓴다는 일은 마치 유치원 아이의 글짓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창피한 느낌도 인다. 나는 인생을 헛살았나. 머리가 이렇게 나쁘나!


그러나 이것 역시 욕심일 것이다. 세상에는 각자의 자리가 있다.

사자는 용맹하고 소는 힘이 세고
꿀벌은 부지런하고
개는 주인을 잘 따르고 고양이는 재빠르다.

각자의 영역이 있을 뿐이다.


하늘 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의미가 있다.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다.

나는 육체미를 만들기 위해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마라톤 기록을 세우기 위해 달리는 것도 아니다.

글을 쓰는 이유도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무처럼 겨울을 지나가면 된다.

욕심을 내려놓고
가볍게 버티다가

때가 되면

산자락 여기저기 피어나는 진달래처럼
조용히 작은 꽃 몇 송이 피우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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