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찬가

아파트 거실 앞 산수유 꽃을 보며 쓴다

by 한재영 신피질

요즘 산수유가 난리가 났다.

아파트 공원에 산수유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온통 산수유꽃이 봄의 기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산수유는 가지가 많아서, 꽃들이 은하수에 있는 별처럼 빛나고 있다. 산수유 은하가 곳곳에 있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 거실 앞에도 제법 큰 산수유 두 그루가 좌우로 서 있다. 산수유 가지는 마치 우산대처럼 퍼져 있고, 그 가지들 위쪽 하늘 방향으로 노란 꽃들이 가득하다. 마치 하늘에 별이 떠 있는 것처럼 산수유 꽃이 공중을 채우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잠시 책을 읽다가, 거실 창을 통해 밖을 보면 거의 산수유만 보일 정도로 꽃이 가득 차 있다. 창이라는 틀 안에 봄이 담겨 있는 셈이다. 봄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들뜨는 느낌이 올라온다. 눈이 먼저 그 꽃을 따라가고, 마음도 덩달아 산수유를 쫓아간다. 벌도 이 추위를 무릅쓰고 산수유 꽃에 유혹당할 것이다.


고목처럼 보이는 오래된 산수유나무도 가지 끝마다 어린 꽃들이 피어 있다. 마치 노란 눈꽃이 가지 위에 내려앉아 하늘을 수놓은 듯하다. 현대 수묵화처럼 고요하고도 선명한 그림이다. 산수유는 작은 꽃이지만 밖으로 드러나려는 힘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하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오히려 청아한 느낌이 올라온다.


산수유는 층층나무과에 속한다. 위로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가지를 층층이 펼치며 공간을 만들어가는 나무다. 그래서 그 가지들은 서로 겹치지 않고, 하늘을 향해 여러 층으로 펼쳐진다. 그 위에 꽃이 피면 하나의 평면이 아니라 여러 겹의 공간이 동시에 열리며, 그 모습이 은하처럼 보인다. 내가 보고 있는 저 산수유의 풍경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낸 빛의 배열이다.


그리고 그 꽃들 옆에는 놀랍게도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붉은 열매가 한두 개 남아 있다. 작년 봄에 맺힌 산수유 열매가 한겨울을 지나고, 아직도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의 새 꽃과 작년의 꽃에서 자란 열매가 같은 가지 위에 함께 있다니, 신기한 장면이다.



산수유는 시간을 끊지 않는다. 지난 혹한의 겨울에도 열매를 떨어뜨리지 않은 채, 초봄의 꽃을 동시에 피워낸다. 나는 지난가을부터 붉은 산수유 열매, 한겨울 매달리고 아직도 버티는 보석처럼 등불 같은 붉은 산수유 열매와 초봄 청아하게 하늘의 별처럼 가득한 연 노란 산수유꽃에 푹 빠졌다.


산수유는 중국이 원산지고 고려시대 때 한국으로 이민온 나무다. 건강약제로 들여온 나무란다. 수유는 붉은 열매란 뜻이니, 산에 있는 붉은 열매이다. 중국에서는 수유가 악귀를 쫓아낸다고 하여 수유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구례에 산수유 군락지가 크게 있다.


붉은 산수유 열매는 항산화 효과 및 신장을 강화한다고 해서, 구례 산동 마을에서 산수유 열매 즙을 가끔씩 구매해서 먹는다. 산수유 열매 즙은 신선하고 맛 좋은 와인을 마신 듯 나에게 신선한 기운을 준다. 숙취 없는 맑고 정정한 산수유의 기운은 산수유 꽃의 청아한 기운과 산수유 열매의 강인한 기운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 당나라의 이백 두보와 같이 3대 시인으로 불린 자연시인 왕유는 타향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썼다.


형제들이 높은 곳에 올라 수유를 꽂고 있을 그 자리에, 나 하나가 없음을 안다


왕유는 당나라 장안에서 관직 생활을 하며 고향 산동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산수유도 봄의 전령사이다. 다른 꽃들 보다도 매우 일찍 피고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오는 나무이다.

산수유와 비슷한 꽃인데 주로 야생에 있는 것이 생강나무꽃이다. 생강나무는 꽃잎이 안으로 오므라지면서 동그란 형태를 띠고, 산수유는 밖으로 눈처럼 펴진 꽃이다.


두 꽃이 같이 있으면 색이 너무 같아서 구별이 안될 수 있다. 그래서 야생의 산에 피는 생강나무꽃을 산수유 꽃으로 오해한다.


산수유가 가지 끝에서 봄을 펼쳐 보인다면, 생강나무는 조용히 몸 안으로 봄을 품는다. 산수유는 보여주는 꽃이고, 생강나무는 안고 있는 꽃이다.


하나는 빛 속에서 피고, 하나는 고요 속에서 피어난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시간 속에서 가장 먼저 봄을 시작하는 존재다.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드러내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조용히 스며들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꽃처럼 보이고, 누군가는 열매처럼 버틴다.


산수유 아래에 서 있으면, 봄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꽃과 열매가 함께 있는 이 장면 속에서, 나는 시간 전체를 본다.


봄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보여주며 오는 봄이 있고, 조용히 안고 오는 봄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채 우리 곁에 매달려 있다.


내 봄은 어떤 꽃인가? 둘 다 있지 않을까?


<산수유 열매>


누런 이파리 전부 떨어진 앙상한 검은 가지
산수유 열매 빨간 꽃처럼 전부 매달려 있네


겨울 세찬 바람에 가지들 모두 꺾일 듯 휘어져도,
작은 촛불처럼 멀리서도 반짝이네.


혹시 간밤 매서운 추위에 아직 매달려 있을까?
애타는 마음에 이른 아침 너를 또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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