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AI시대 왜 기업을 다시 묻기 시작했는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경제는 전례 없는 속도로 성장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1960년대 1인당 GDP가 100달러 수준이었던 한국은 이제 3만 달러를 넘는 경제 규모에 도달했다. 수출은 세계 상위권이고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에 자리 잡았다. 숫자로 보면 우리는 분명 성공한 국가에 속한다.
최근 금융시장만 보더라도 이러한 분위기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공지능 산업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투자가 급증하면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그 결과 메모리 산업의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다시 시장의 중심에 섰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20만 원, 하이닉스 100만 원 같은 상징적 숫자까지 오르내린다. 산업의 기대가 자산 가격으로 번역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거시적 성공과 개인의 체감 사이에는 점점 더 큰 간격이 생기고 있다.
세계은행과 OECD가 반복적으로 지적해 온 흐름은 단순하다. 경제가 커질수록, 자산 가격이 오를수록, 그 상승의 혜택은 대체로 자산을 보유한 집단으로 집중된다. 주식과 부동산은 “성장”을 가장 먼저 반영하지만, 그 반영이 모든 사람의 삶으로 고르게 스며드는 것은 아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그 성장이 모든 사람의 경험이 되지 않는 순간, 성장은 축하가 아니라 비교가 되고, 비교는 박탈감이 된다.
주식 시장에서 이 감정은 특히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떤 기업의 주가가 크게 오를 때, 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사람에게는 ‘성장의 보상’이 돌아오지만, 보유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성장의 소외’가 남는다. 투자 여력이 큰 사람들은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해 자산 가격 급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을 감당할 여력도, 기회를 분산할 여력도 부족하다. 같은 경제 속에 살지만 체감하는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공허가 시작된다. 우리는 성장의 결과를 ‘국가의 성취’로는 확인하지만, ‘나의 삶’으로는 확인하지 못한다.
이 공허는 단지 심리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구조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경제의 특징 중 하나는 시장 집중이다. 플랫폼 산업과 반도체 산업은 초기 투자 규모가 매우 크고 네트워크 효과가 강하다. 승자가 시장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구조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기업 목록이 몇 개 기업에 의해 반복적으로 채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이 커질수록 부가 넓게 퍼지기보다 특정 기업과 자본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강해진다.
플랫폼 경제는 이 집중을 일상 속에서 체감하게 만든다. 쿠팡 같은 플랫폼 기업이 매출과 이익을 빠르게 확대할 때, 소비자는 편리함과 가격 경쟁력을 얻는다. 그러나 같은 시간대에 골목상권은 더 거친 현실을 맞는다. 동네의 소매점, 작은 식당, 소규모 유통업은 고객 흐름이 바뀌는 순간 생존을 위협받는다. 한쪽에서는 ‘혁신’이 가속되지만 다른 쪽에서는 ‘폐업’이 누적된다. 같은 성장이라도 사회 안에서 분배되는 형태가 달라진다. 성장의 중심부는 더 빛나고 주변부는 더 얇아진다.
기술 발전의 방향 또한 중요한 변화를 보여준다. MIT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는 기업들이 기술을 도입할 때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보다 노동을 대체하는 방식이 강화되는 경향을 경고해 왔다. 자동화 설비와 인공지능 시스템은 기업의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지만, 고용 증가로 직결되지 않는다.
이 변화는 숫자보다 구조로 읽히는 것이 더 정확하다. 산업화 시대의 제조기업은 매출이 커질수록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러나 오늘날 플랫폼 기업이나 소프트웨어 기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도 막대한 매출을 만들어낸다. 성장과 고용의 연결 고리가 약해진다. 기업은 더 덩치를 키우지만 인력은 늘리지 않거나 오히려 축소한다. 구조조정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상시적 경영 방식’이 되어 간다.
인공지능의 확산은 이러한 변화를 더 빠르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옥스퍼드 대학 연구진이 자동화의 영향을 받을 직무 비중을 분석했을 때 핵심은 하나였다. 모든 직업이 사라진다는 주장이 아니라, 노동 시장의 구조가 크게 재배치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반복 업무뿐 아니라 일부 전문 직무 영역까지 영향이 확장될 수 있다면, 문제는 일자리의 숫자를 넘어 인간의 역할과 소속의 형태까지 흔든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런 위험을 ‘쓸모없는 계급’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했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장 속에는 질문이 담겨 있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덜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때, 사회는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포용할 것인가. AI 연구의 선구자인 제프리 힌턴 역시 생산성의 비약이 부의 집중과 불평등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효율은 인간의 삶을 자동으로 구원하지 않는다.
이제 문제는 경제를 넘어 사회 구조로 이동한다.
산업사회에서 기업은 경제 조직인 동시에 사회적 조직이었다. 직장은 소득을 얻는 장소이면서 관계망을 형성하는 공간이었다. 동료와 선후배가 있었고, 장기 고용이 있었고, 조직 내부의 관습이 있었다. 기업은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중간 구조로 기능했다. 사람들은 회사에 들어가면서 ‘일자리’뿐 아니라 ‘소속’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빠르게 개인화되고 있다. 개인화는 단순히 혼자 사는 사람이 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규칙이 관계에서 계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기업과 개인의 연결은 점점 더 계약적인 형태로 정리된다. 정규직 중심의 장기 소속 관계는 약해지고 계약직, 프로젝트형 고용, 플랫폼 기반 노동이 늘어난다. 구성원들의 공동체로서의 기업이 아니라, 개인과 기업이 조건을 맞춰 만나는 계약의 장으로서의 기업이 강해진다.
이 변화는 기업 내부 문화에서도 체감된다. 예전에는 회사 안에 ‘법과 규정’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집들이에 초대하고, 돌잔치에 함께 가고, 늦은 야근 뒤에 같이 밥을 먹고, 힘든 시기에 동료가 옆에 앉아주는 관습이 있었다. 그 관습은 회사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 만들어 온 일종의 사회적 접착제였다.
지금은 그 접착제가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관습은 ‘불필요한 비용’으로 취급되기 쉽고, 인간관계는 ‘리스크’로 관리되기 쉽다. 대신 계약과 법규가 앞선다. 효율은 좋아지지만 연결은 얇아진다. 기업 안에서 인간은 점점 더 ‘구성원’이 아니라 ‘기능’으로 정의된다.
이 흐름은 기업 밖의 삶에서도 이어진다. 아파트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되었지만 이웃과의 연결은 오히려 희박해졌다. 같은 층에 살면서도 서로 이름을 모르고, 같은 단지에 살면서도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공동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축소된다. 관계의 빈자리에 각자도생의 생활양식이 들어온다.
출산율 저하, 결혼 기피, 고독사의 증가는 단지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환원하기 어렵다. 물론 문화적 요인과 가치관 변화가 크다. 그러나 사회적 연결이 약해지고 생존이 개인의 책임으로 수렴되는 구조 속에서, 가족과 공동체는 ‘의지할 곳’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프로젝트’처럼 인식되기 쉽다. 관계를 맺는 비용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관계를 줄인다. 사회가 개인화될수록 삶의 위험은 더 개인에게 전가된다.
이때 한 가지 현상이 눈에 띈다. 반려동물의 증가다. 이것을 단순한 유행으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서적 연결이 약해질수록, 인간은 외로움을 다른 형태의 관계로 보완한다. 반려견이 늘어나는 것은 소비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계 트렌드이기도 하다. 공동체가 축소되는 사회에서 정서적 필요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상황 앞에 서 있다.
경제는 성장했고 기술은 발전했으며 기업은 역사상 가장 커졌다. 그러나 동시에 자산 격차는 확대되고 고용은 계약화되며 공동체는 약해진다. 성장의 성과는 눈에 보이지만, 성장의 의미는 점점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성장이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는 것처럼, 사회도 성장의 뒤편에서 다른 방식의 ‘비용’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요를 확대하기 위해 통화량이 늘고 물가가 오르듯, 기업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자동화와 AI를 도입하고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서 사회의 관계망이 얇아진다면, 그 비용은 고독과 불안, 박탈감의 형태로 누적된다.
이 지점에서 공허는 더 선명해진다.
기업이 인간을 포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기업이 ‘인간의 집합체’가 아니라 ‘인간을 대체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할 때, 관계는 계약으로, 공동체는 플랫폼으로, 삶은 각자도생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기업에서 실직하는 순간 개인은 단순히 소득을 잃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생존 위기는 더 치명적이 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공허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신호일지도 모른다. 성장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이 아니라, 성장만으로는 사회를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성장은 이루어졌지만 그 성장이 더 이상 사회 전체의 방향을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AI 시대에 기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