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2장 컨트롤 타워의 착시
— 삼국지, 로마, 그리고 한국 기업
고대의 전쟁터에서는 승리하면 전리품을 나눴다.
함께 싸운 병사들에게 전공에 따라 분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야 충성심이 생기고, 다시 싸울 힘이 생겼다.
그런데 2천 년이 지난 지금, 현대 기업은 어떠한가.
회사는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성과는 오너와 소수 경영층에 집중된다.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건 일시적 인센티브나 약간의 보상에 불과하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전했는데, 성과 분배는 오히려 고대보다 퇴보한 듯 보인다.
- 세대를 거치며 사라진 체험형 리더십
한국 기업의 리더십을 돌아보면, 세대별로 뚜렷한 차이가 보인다.
1세대 창업자들은 실패와 좌절을 몸으로 겪으며 사업을 일으켰다. 협력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고, 그래서 실천적, 협력적 리더십이 있었다.
2세대는 창업자의 곁에서 고생을 함께하며 간접적으로라도 현장을 배웠다.
하지만 3세대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졌다.
저출산으로 형제간 경쟁도 줄고, 안정된 환경에서 기업을 물려받았다. 위기와 도전의 체험이 단절되면서, 리더십은 점점 ‘리스크 회피형’으로 변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현장 경험과 모험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리더십 자체가 보수적으로 고착된 것이다.
제갈공명형 리더십과 카이사르형 리더십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 나는 역사 속 인물들을 떠올린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신출귀몰한 전략가로 칭송받지만, 사실 참모형 인물이었다. 즉 부하들에게 전권을 위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직접 간섭하는 스타일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본인은 전략과 지혜가 없지만, 유능한 참모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여, 초한 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한나라를 건국했다.
제갈공명은 리스크를 최소화하여, 전쟁의 안전을 도모했지만, 결국 패배하여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지는 못했다. 사실 북벌의 실패는 그의 리더십 한계가 드러난듯하다.
반면 로마의 카이사르는 달랐다. 그는 막대한 빚을 지고 군대를 유지했고, 로마 방어 성곽을 무너뜨리며 도시를 개방했다. 그 자체가 엄청난 리스크였다. 하지만 그 결단이 로마를 제국으로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그는 현장 관리자인 백인대장에게 전권을 주었고, 병사들과 전쟁터에서 같이 먹고 자고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또 자신의 사재와 전쟁 전리품을 아낌없이 풀어 병사들의 충성심을 확보했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
리더십의 본질은 결국 리스크를 감수하는 용기, 그리고 성과를 함께 나누는 의지다.
한국 기업의 오너 중심 구조
한국 기업은 1980년대까지 종합상사 체제로 성장했다. 삼성물산, 현대상사 같은 무역회사가 세계시장을 개척하며 국가 경제를 이끌었다.
이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개별기업들이 급격히 성장하며 전문화로 전환했다.
문제는 지배 구조가 여전히 과거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전문화됐지만, 실제로는 오너 그룹이 스마트폰, 반도체, 가전, 자동차 등 서로 다른 업을 통합 관리한다.
업의 특성은 전혀 다르다.
스마트폰은 조립산업이다. 속도, 디자인, 마케팅이 생명이다.
반도체는 장치산업이다. 수십조 원의 투자와 장기적 공정 개발이 핵심이다.
심지어 반도체 안에서도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완전히 다른 DNA를 가진다.
이처럼 속성이 다른 사업을 하나의 오너 리더십 아래 두는 것은, AI와 같은 급격한 산업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물론 사업부 독립 체제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룹의 스탭조직이 중요한 사항을 참견하고 결정한다.
성과 분배의 부족과 직원들의 박탈감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성과 분배의 구조적 후퇴다.
내가 아는 한 후배는 미국 현채인으로 있다가 엔비디아로 자리를 옮겼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는 회사 주식 보상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 왜일까? 엔비디아 같은 미국 기업은 직원 보상의 핵심에 RSU(Restricted Stock Unit, 조건부 주식 보상)가 있다.
회사가 잘되면 주가가 오르고, 직원의 자산도 함께 늘어난다. 직원도 회사 성공의 ‘파트너’가 되는 구조다.
반면 한국 기업은 여전히 연봉과 일시적 성과급 중심이다. 스톡옵션 제도가 있긴 하지만 임원급이나 일부 직군에 제한되고, 보상 규모도 미미하다. 회사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직원 대부분은 자산 축적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 결과가 어디서 드러나는가? 바로 OECD 노인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다.
퇴직 후 자산이 충분히 쌓이지 않으니, 수많은 직장인이 은퇴와 동시에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기업은 세계적 부자가 되었는데, 직원은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는 모순이 한국 경제의 그림자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
AI 시대는 속도와 개방, 협력이 핵심이다.
• TSMC는 파운드리에 집중하며 고객 신뢰를 얻었고,
• 엔비디아는 GPU를 AI에 과감히 전환해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으며,
• 애플은 반도체 생산을 아웃소싱하고 자사의 강점에 집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 리더십이 제갈공명형 참모 리더십에 머문다면, 카이사르형 리더십을 가진 글로벌 경쟁자들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바꿔야 할 방향
첫째, 리스크를 감수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사내유보금을 단순히 쌓아두지 말고, 신기술과 신시장 개척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이것은 대기업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기업에 해당하는 것이다.
중소기업 등의 사내 유보금은 결국 오너 자산이다. 이것을 미래 경제에 투자하여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성과를 공유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RSU처럼 회사 성과가 직원의 자산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야 직원이 회사를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와 연결된 터전으로 느낄 수 있다.
셋째, 전문화된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 서로 다른 업을 오너가 모두 통합 지휘하는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
리더십의 본질은 두 가지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용기와, 성과를 나누는 정의.
고대의 전쟁터에서도 전리품은 나눴다.
오늘의 기업은 더 큰 전리품을 만들어내면서도, 그것을 나누지 않는다.
AI 시대에 한국 기업이 다시 도약하려면,
우리는 제갈공명형 관리 리더십을 넘어, 카이사르형 창조 리더십으로 나아가야 한다.
함께 싸운 이들과 성과를 나누는 것, 그 단순한 진리가 2천 년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다시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