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사람은 있을까?#2

동료.. 그리고 적

by 방구석오랑우탄

처음엔 다 동료였다.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냄새의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같은 병동을 걸어 다니며
같은 환자에게
같은 설명을 반복하던 사람들.
누가 더 잘하느냐보다
누가 더 버티느냐가 중요하던 시절,
우리는 서로를
편이라고 착각했다.


어깨가 아픈 날엔
말없이 테이핑을 감아줬고,
손목이 망가질 것 같을 땐
“조심해라”
그 한마디로 위로가 됐다.
그땐 그게
진심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화의 방향이 달라졌다.
환자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가 늘어났고,
조언보다는 평가가 많아졌다.
“쟤는 좀 무리하는 것 같지 않아?”
“요즘 태도가 좀…”
그 문장들 속엔
항상 주어가 빠져 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누구든
그 자리에 없으면
그 주어가 될 수 있었으니까.
동료는
같은 편이 아니다.
동료는
같은 구조 안에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언제든 사람을
비교하고, 줄 세우고,
조용히 갈라놓는다.
나는 뒤늦게 알았다.


내가 한 말들이
그대로가 아니라
가공된 채로
다른 사람의 입에 올라간다는 걸.
맥락은 사라지고
의도는 잘리고
결론만 남았다.
그때부터
웃는 얼굴이
위로가 아니라
정보 수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가벼운 안부가
탐색으로 느껴졌고,
침묵이
유일한 방어가 되었다.


적은
크게 싸우지 않는다.
소리도 안 지른다.
그저
조용히 기록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쓸 뿐이다.
그래서 더 피곤하다.
싸울 상대도 없고
해명할 자리도 없다.
이미 이야기는
끝나 있고,
나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름만 불린다.
이 일을 하며 배웠다.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관계는 관리해야 한다는 걸.
손은 환자에게 내주되
등은 아무에게도 맡기지 말 것.
모든 동료를
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모든 동료를
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중간 어딘가,
차갑지만 안전한 거리.
나는 이제
함부로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내 입으로만 끝낸다.
침묵이
가장 오래 남는 증거라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동료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고,
적은
같이 웃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둘은
생각보다
자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