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남고, 사람은 사라지는 곳에서
처음에는 나도 몰랐다.
다른 선생님을 험담하는 환자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그 선생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치료사를 비꼬며 욕하는 환자를 보며
‘아, 이 환자가 문제구나’라고 단정했다.
그게 가장 쉬운 이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환자를 직접 맡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선생님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알게 됐다.
서로가 했던 말들이
모두 맞지는 않았다는 걸.
누군가는 과장했고,
누군가는 생략했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기억했다.
그 사이에서 진실은
항상 가장 조용한 자리에 있었다.
나는 어느새
누군가의 말만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미 나 또한 누군가의 말 속에서
판단당하고 있었다.
지금의 실장은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아니면,
그도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한때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내게 도수치료를 받았고,
치료를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순간만큼은
동료라고 느꼈다.
같은 선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점점 멀어졌다.
말수가 줄었고,
시선이 달라졌고,
결정은 나를 비켜간 채 이루어졌다.
그 변화에는
어떤 설명도 없었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나는 여전히
치료를 잘하고 싶었다.
환자를 낫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시간을 썼고,
돈을 썼고,
내 공부와 체력을 갈아 넣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평가는
치료가 아니었다.
“라포가 부족하다.”
“말을 좀 더 잘해야 한다.”
“입이 트여야 치료도 잘하는 거다.”
어느 순간부터
치료를 잘하는 사람의 기준은
손이 아니라 입이 되었다.
몸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분위기를 맞추는 사람이 되었다.
실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년차 아니잖아?”
그 말은 격려도, 조언도 아니었다.
그동안의 시간과 경험을
단숨에 무시하는 말이었다.
실력이 아니라
비위를 맞추라는 요구였고,
나를 다시 아래로 밀어내는 방식이었다.
나는 치료사로서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를 하기 위해
내 돈과 시간을 썼다.
하지만 병원이 원한 건
그런 노력이 아니었다.
돌아온 건
“조금만 맞춰라”
“너무 진지하다”
“분위기 좀 읽어라”라는 말뿐이었다.
그때 느꼈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혐오와 멸시라는 걸.
의사와 간호사들 사이에서
치료사는 점점
전문직이 아니라
편의 인력처럼 취급되었다.
우리는 실력을 쌓는 사람들이 아니라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로 인식됐다.
치료실은 점점 바뀌었다.
치료가 사라지고,
마사지가 남았다.
판단과 계획은 줄어들고,
기분을 맞추는 손길만 늘어났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정말 좋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이 구조 안에서는
좋은 사람조차
다른 모습으로 변해야만
남을 수 있는 걸까.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시간을 지나며
나까지 누군가를 헐뜯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는 것.
치료를 버리고
말만 남기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는 것.
정말 좋은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좋은 사람이 되려다
망가진 사람으로는
남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