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라가드Charlie Lagarde 라는 캐나다 10대 소녀가 캐나다 로또복권에 1등 당첨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것 2018년이었다. 18세가 되는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구입한 복권이 당첨되었으니 그만한 생일선물은 상상할 수도 없는 득템일 것이다. 1백만 캐나다 달러를 2025년을 기준으로 다시 환산해보니 한화로 약 10억원 정도이고 일시불 기준으로 세전금액이니 실수령액은 그보다 적을 것이다. 그러나 일시불로 수령하는 대신 주당 1000달러, 140만원 정도를 평생 연금처럼 받는 결정을 하였다.
이 뉴스를 접할 때쯤 나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 정착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였다. 직전해인 2017년 3주간의 유럽여행과 한달 여의 타이페이를 경험한 후, 영종도라는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고자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다. 인천공항과 일자리, 그리고 여행. 일하고 비행기 타고 여행하는 것밖에는 생각에 없었고 그 즐거움을 이제 조금씩 알아가던 과정이었다.
찰리 라가드의 복권당첨 기사를 접한 나의 첫반응 부러움, 완전 부러움 그 자체였다. 30대 중반이든 혹은 60이든 80이든 당첨만 된다면야 언제든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인생에 요행을 바라는 태도는 나와 거리가 멀다는 걸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그런 걸 기대하며 살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은 있었다.
그 기사에서 찰리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여행을 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계획과 희망을 내비쳤는데 그 부분이 나를 멈춰세웠던 것 같다. 나에게 여행이란 뭘까?
2017년 이후
타이페이에서 한달을 보내고 돌아온 지 사흘 후였다. 2017년 12월 18일 영종도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는데 난 인천공항 부근 물류단지에 순환버스를 타고 첫출근을 하고 있었다. 초행길에 폭설이 내리지 앞뒤 분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일용직 일자리로 면세점 물류센터를 찾아 해매고 있었으니 엄밀히 첫출근이라 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그날부터 일용직으로 다음 해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일당을 다음날 오전에 받는 식으로 돈을 모아 미래에 대한 저축의 여력 없이 일상과 여행을 감당해내는 생활 속에서 찰리 라가드의 기사를 봤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난 내 자신이 무척 행운아였다고 생각한다. 한순간 내 삶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었을텐데 '나의 여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꽂힐 수 있었다는 건 7년이 지난 지금에 돌이켜봐도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난 찰리 라가드의 '끝내주는 인생'을 상상했다. 평생동안 주당 140만원의 연금을 받으며 대학에 입학해서 학자금을 물론 어떠한 금전적 어려움 없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물질적 기반은 갖춰졌다. 좋은 가정과 환경에서 자신의 재능을 쏟아부을 전공과 직업을 갖게 것임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어쩌면 나의 여행에서 마주치거나 스쳐지나갈 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가. 그때 내가 찰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는가, 그것이 나의 질문에 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일상의 연장선에서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은 밧줄이다"라고 말한 건 니체이다. 초인과 동물은 차지하고 '밧줄'이 주는 그 팽팽히 당겨진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밧줄을 일상과 여행 사이에 놓으면 매우 자연스러운 그림이 내겐 그려진다. 2025년 7월 무더위에 여름휴가를 떠올려 보면, 무더위에 지친 일상의 피로를 날려버리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란 캐치프레이즈가 얼마나 완벽하게 들리는가.
피서라는 말에서 더위를 피해서 떠나는 것처럼 일상의 시공간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여행과 결부짓는 것은 '단절'이다. 반면, 충실한 일상을 여행으로 확장시키는 행위는 '연결'이다. 단절과 연결은 여행이 추구하는 두 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을 떠나 타이페이로 날아갈 때 한국과는 단절될 수 있겠지만 대만과는 연결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이 두 가지는 배타적이지 않다. 다만, 연결의 관점에서 더 많은 여행의 혜택이 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나의 경험이다.
물질적 조건의 한계
일용직 삶에서 넉넉하지 못한 여행이지만 혼자였기에 공항을 드나들 수 있었던 유리한 조건은 있었다. 면세점 물류센터 일이 예상외로 잘 맞았는데,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flow'를 몸소 경험한 건 의외의 선물이었다. 그러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수개월 기다려 떠나는 여행은 특별할 수밖에. 게다가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내 가진 걸 모두 쏟아부었다는 확신에서 오는 자부심이 값을 매길 수 없는 보상으로 돌아왔다. 이 점에서 찰리 라가드의 미래에 비춰 내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 비결이 있는 것 같다.
2025. 0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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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라가드 복권당첨에 관한 bbc기사>
https://www.bbc.com/news/world-us-canada-43561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