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료샤적 카라마죠프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에 관하여

by MOC

81년생 닭띠인 내가 닭과의 유대감을 느끼는 건 '품는다'는 동사 때문이다. 스쳐지나간 이미지, 문장, 소리, 음악, 질문 등등 그 어떤 것이든 닭이 알을 품듯 마음속에 품을 수 있을 때, 병아리에 대한 닭의 모성애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알료샤


작가는 얼마나 이 인물에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는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은 아들의 이름을 그대로 심어놓기도 하였지만 조시마 장로를 통해 종교적 신비에 휩싸여 있는 것 같은 이 인물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게 만든다.



속세에 머물라


<갈릴래아의 가나>편에서 조지마 장로가 알로샤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이다. 수도원에 있는 알료샤에게 "속세로 떠나라", "속세로 나가라", "수도원을 떠나라"가 아니라, 왜 "속세에 머물라"라고 표현했을까.


'속세'라는 말도 근사하다. 세상을 종교적 관점에서 일컫는 표현이다. 속세 혹은 세속, 그리고 탈속의 신성한 경지가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상기시킨다. '머문다'는 뿌리박고 산다거나 정착한다는 것과 달리 잠시 멈춰서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속세에 머물다 어디로 간다는 말일까.



가나의 혼인잔치


아 미안. 이 이야기를 먼저 했어야 전개순서가 자연스러웠을텐데 내 마음이 너무 앞서고 말았다. 앞서 조지마 장로의 '마지막 말'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는 이미 임종을 맞았고 그의 관앞에서 슬픔에 잠겨 졸다가 알료샤의 꿈속에서 나온 조지마 장로의 말이라고 해야 옳다.


예수가 지상에 내려와 행한 첫번째 기적이라고 알려진 가나의 혼인잔치. 이 기쁨의 자리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에게 이 사실을 넌지시 알린다. 물을 포도주로 바꿔 이 잔치의 기쁨이 멈추지 않도록 한 기적, 그 기적은 기쁨과 행복과 축복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료샤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황홀경 속에, 방금 전까지 관속에 누워있던 조지마 장로와 재회하며 감격에 빠진다.


"땅을 너의 기쁨의 눈물로 적시고 너의 그 눈물을 사랑하라....."


".... 이 모든 하느님의 무한한 세계들로부터 흘러나온 실들이 한꺼번에 그의 영혼 속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고...."



알료샤적 카라마죠프


모순과 극단, 숭고와 타락을 동시에 품고 있는 '카라마조프적'(Карамазовщина, Karamazovshchina)인 특성은 어둡다. 이 작품의 사건들에서도 느낄 수 있듯, 그렇기에 이 속에서 알료샤라는 존재는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러나 그가 주인공으로서 활약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작가는 후속편을 예비하고 이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에 조금의 위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땅으로 몸을 던질 때 그는 연약한 청년이었지만 일어섰을 때는 한평생 흔들리지 않을 투사가 되어 있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중 대작이지만 내가 <갈리래아 가나> 이 단 한장에 주목하는 건, '알료샤'라는 존재에 꿈과 희망 그리고 미래를 담아 신앙의 자궁에 잉태시킨 '사건'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세속의 카라마조프가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자 태어나는 생명이다. 우리가 품을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의 책장을 덥는 순간, 알료샤로 태어나 살아갈 당신은 누구인가."



2025. 08.21.


#worldismyoyster

#contemporarypilgrimage

#crown4cl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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