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잊어버리는 것들


1.

살아가면서 잊었던 게 있었다. 나와의 시간이다. '쉬어가기', '되돌아보기', '멍 때려보기' 이런 것들은 정~말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나와의 대화라는 건 무엇인지 전혀 몰랐었다. 무작정 홀로 걸었다. 무의미한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왜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렇게 걷기와 산책이 중요하다고 강요했는지 무척이나 이해하고 싶었다. 당시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작정 따라 하며 걷기 시작하니 하나씩 길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2.

나를 알아가기를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했다. 하루마다 가계부를 쓰며, 어느 곳에 지출하는지 왜 지출하였는지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 감정에 대한 기록도 했다.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무엇이고, 기분이 나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타인으로 인한 거라면 왜 그랬는가? 돌아보았다. 시간도 추적했다. 어느 시간에 나는 기분이 좋고, 몇 시간을 자야 상쾌한가? 하나씩, 하나씩 실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나는 나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런 시간을 지내고 나니,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타인의 의식이나 신경 썼지, 내 마음에 대한 관찰을 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 쪽팔리고, 미안했다.









3.

그때부터였다. 걷기가 즐거워졌었다. 언제부턴가 산책하며 '사색'이란 걸 하게 되었다. 나 같은 초보자에겐 '사색의 시간'은 매우 짧았다. 자연의 힘을 빌리기 위해 산책하였고, 음악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워낙 유명한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의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힘을 빌렸다. 더욱 몰입되기 시작하였고, 걸을 때 내 사색의 농도는 짙어졌다. 시간이 흘러 스스로 사색가가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홀로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즐거워졌다. 마음과 정신은 한결 가벼워졌고, 자유로워졌다. 이전에 내 모습에서 볼 수 없는 막혀있던 순수한 행동들이 나왔고, 나를 알아가는 낯선 환경에 나를 던지는 게 익숙해졌다.








4.

산책을 넘어,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고, 최근에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한창 글을 쓰지 않았었다. 놀랍게도 쓰고 싶은 글도 없었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던 때였다. 여러 사건들 때문인지, 내 감정은 '허무함'이 가득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해탈했나 싶기도 하다. '내게 왜 이런 시련이 닥쳤는가?' 의문했건만 새로운 감정이 내 정신을 지배하여 놀랍기만 하다. 거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되, 단단한 뿌리를 지닌 나무처럼. 자연에 맞게 흔들릴 줄 알며 버텨낼 줄도 아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5.

잠깐 놓아버린 '나와의 시간' 다시 잡게 되어 글을 쓰게 되었다. 세상을 살다 보며 느낀 게 하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 우리를 쉴 새 없이 유혹한다. 고요함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바쁜 시대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여유롭고 고요한 사람이 얼마나 우아한지에 대해. 우아함이란 화려함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초연함이 바로 우아함이 된다. 자신의 자리에 우직하게 서서 빛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잘 알고, 잘 알아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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