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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어떤 관계든 이별하는 순간이 찾아오기에

인관 관계는 마치 우유를 비유하기 쉽다.

대부분 사람은 우유를 구매할 땐, 긴 유통기한을 가진 우유를 구매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유통기한이 다가오기 전에 다 먹는다. 혹은 유통기한이 훨씬 지났다면 가차 없이 버린다.



그런 이유는 간단하다. 상했으니까.

그리고 내 몸에 해로우니까.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도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지만, 관계에 이로운 기한과 해로운 기한이 생긴다.



- 상대가 변한 걸까?

- 자신이 변한 걸까?

그건 모른다.



벚꽃도 어느 해에는 일찍 피고, 어느 해에는 일찍 진다.

기상청 예보와는 다르게 화창하다는 내일, 비가 내릴 수 있다.



평생 함께하고 싶은 기대심은 되려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며,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염려해야 된다.



평생 소유물이란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단 한 가지만 존재한다. 오직 자신.



- 사랑하는 인연에게 자신을 맡기지 말라.

- 존경하는 부모에게 자신을 맡기지 말라.

- 좋다는 친구에게 자신을 맡기지 말라.



언젠가 우리는 이별 승차권을 끊고 탑승해야 하니까.



이별은 아쉽고, 씁쓸하지만은 않다.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이 또 기다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길 사실은 다음과 같다. '그럼에도 이롭고, 해로운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어차피 떠날 관계인데, 뭐 하러 잘해줘?'



타인을 대하는 건, 자신을 대하는 방법과 같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게 가능하다.



아니면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한다.



타인에겐 막대하며, 자신에게 관대한 삶.

그런 삶은 머지않아 잘못됨을 깨닫기 마련이다.



나는 늘 사람, 사람 하지만, 막연하게 사람과의 이별은 너무나도 아쉽다. 그렇기에 때로는 만남도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사람에 대해 공부하며, 맺어지는 인연을 거부하진 않는다. 어떤 인연이든, 늘 자신에게 가르침을 남기고 가니까.



이별이란 고통이 싫다며, 인연을 거부하진 말자.

고통 없는 평온한 삶이 축복 같아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비극이다.



어차피 이별이 존재하고, 또 고통은 느낀다.

고통을 주는 존재는 어차피 자신이니까.



삶의 큰 숙제는 과거로부터 무뎌지지 않고, 사랑하는 힘을 길러가는 숙제 같다.



마치 나는 작은 나무를 바라보며 물을 주는 기분이다.


단단한 뿌리를 내려앉으며, 상처가 보이는 기둥을 가졌지만 그런 나무에서 나오는 활짝 피는 잎과 열매를 위해.



때로는 고독하고 차가운 삶 같지만, 그런 삶 속에서 탄생하는 생명의 온기는 마냥 고독하고, 차갑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태어난 목적 자체만으로도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겨울철, 온기를 전달하는 핫팩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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