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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인간은 살인자다.

솔직함과 무례함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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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솔직하다는 핑계로 타인에게 상처 주는 인간을 본다. 편을 만들기도 어려운 시대에, 굳이 적을 만든다. 그 모습은 마치 한 나라의 이기적인 주인 같다. 실체는 그렇지 않지만.


무례함을 지닌 살인마


최근 들어, 솔직함이 어긋나면 무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솔직하다는 주관을 방패 삼아, 타인을 칼로 찌르는 무례함이 어리석다 느꼈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솔직함이 어긋난다면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이 돼버린다. 더군다나 적을 만들어버린다.



'그런 건 상관없어.' 이렇게 말할지 몰라도 본인도 무례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알고는 있는지, 표정은 여유롭지 않다.



솔직함은 좋다. 하지만 무례함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건강하게 사용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예로 회사에 들어갔을 때,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인지하는 건 좋은 현상이다. 비판도 자유다. 하지만 굳이 적을 만드는 행위까지 번진다면 위험하다.



'이 회사는 최악이에요. 저랑 맞지 않아요. 왜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말한 이는 자신은 솔직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작은 어긋남이 무례함을 만들었다.



우리는 대상을 이해하며,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중심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 마련이다.



침묵이 약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그걸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의 전제는 '굳이 적을 만들지 말라.'다.



세상에는 나와 맞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컨디션이 어제, 오늘, 내일 일정하지 않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해왔다. 이런 여정에서 퍼즐처럼 딱 맞는 인연을 바라는 건 노력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물의 경우는 자신이 이해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상호가 서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에 관계가 복잡하다 느낀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는 솔직함의 가면을 쓴, 무례함의 칼을 든 살인자들을 발견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이타적으로 넓은 의식을 가지고 생각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자신과 맞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맞는 것만 찾으려는 게으른 심보가 어리석을 뿐이다. 노예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나 또한 솔직함과 무례함의 중간에서 말하는 게 무서워졌다. 때로는 내가 이 환경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심보에서 나온 생각의 결과가 아닌가? 자문한다.



무례함이 얼마나 많은 피를 보게 만드는지. 무례한 인간을 마주하며 배웠다. 솔직함을 방패 삼아,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진 않다.



편을 만들 필요는 없는데, 굳이 어리석게 적을 만들진 말자. 적은 언제 자신의 등에 칼을 꼽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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