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화장실 가도 되냐고 묻는 것조차 어려웠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군대에서 손을 번쩍 들고, 분대장(리더) 역할을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상황'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빡빡이들은 나에 대해서 모르니까.' 이런 생각 하나로 손을 번쩍 들며 연기했다. 그 순간은 마치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마치 거짓을 실토하는 마음은 쿵쾅거렸다. 아닌 척하며, 혹시나 연기가 틀릴까 걱정했다. 그런 걱정도 잠시. 한 친구가 말하길. '네가 할 줄 알았어.' 내 명품 연기는 막을 내렸다. '맞아, 내가 해야지.'
그렇게 난 상황을 이용하는 법을 터득했다. 아무도 날 모른다면 언제든 가능한 사실이다. 이건 군대, 사회 등. 하나의 집단에서 나를 정의하지 못했을 때 사용이 가능하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초반이 제일 중요한 타이밍이라 생각한다. 마치 카드게임처럼, 패를 잘 뽑아야 된다. 실력도, 운도 맞아야 역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자세히 회상하다니. 그때의 기억으로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어서 그렇다.
그간 수 백 권의 책을 읽고,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배웠다. 경험이라고 한다면 정말 많은 경험들을 쌓아왔다. 단순 요약하자면 배움의 삶을 지속하고 싶다는 말이 끝이다. 그리고 유명한 어록을 계승받은 기분이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난 끊임없이 자신을 모른다는 초점에 맞춰 배움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삶을 참 좋다. 정의 없는 삶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 되니까. 마치 세상은 내 놀이터가 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너무 많은 딜레마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비유하자면 같은 음식도 계속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듯, 내게도 실증이 찾아온 듯하다. 더군다나 삶의 한계가 느껴졌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봤자, 성장에는 한계가 있겠거니 싶어졌다. 이젠 잘하는 분야를 넘어, 못하고 있던 분야까지 건드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의욕 가지고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다.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과거의 나는 나일뿐. 나는 또 새로워지며, 새로운 선택을 하기로. 인간의 고무줄 같은 관성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그럼에도 난 해내야만 한다. 내게 인생은 이 순간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밝아지려면 결국에 초를 하나씩 킨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절실히 알았기 때문에.
해보지 않았던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나를 바꾸길 믿는다. 지금까지도 잘 바꿔왔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1)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정체성을 바꾼다.
2) 낯선 어색함에서 설렘으로 감정을 세뇌시킨다.
3) 전혀 해보지 않았던 분야를 해봤던 것처럼 경험한다.
4) 이걸 여러 번 지속하며 반복한다.
자, 이제 5월이다. 글의 결심처럼. 난 또 해내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더욱 잘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든다. 나 자신을 바꿀 수 없다면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나만 바꾸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해결되기 시작한다. 문제는 비로소 밖이 아닌, 안에 있을 확률이 높다. 나부터 바꿔야 많은 게 바뀐다. 대상은 문제가 없다. 문제를 바라보는 요소가 문제일 수 가능성도 의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