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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많은 인간의 인간관계

어린 시절부터 정이 참 많았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형과 하루를 같이 놀고 헤어지면 이별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었다. 점차 내 모습이 성장하면서, 나의 모습근 점차 변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회고를 한다.



1. 상대 인식의 차이

인간관계는 조화이기 때문에 자신과 맞지 않는 색이 존재한다. 난 누구와도 맞춰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질문하고, 책을 읽으며 추론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자신조차도 자신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자신에 대한 공부를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때 다양한 오류가 발생한다.



핵심적으로는 '인식의 차이'다. 내가 내뱉는 언어는 상대가 인식하는 언어와 차원이 다르다. 마치 외국인이 서툰 한국어로 반말을 하면 웃으며 이해하지만, 같은 한국인이 자신에게 반말하면 안 좋은 감정과 함께 상대한테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이처럼 어떤 시야와 생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식은 뒤바뀐다.



놀랍게도 대화에서도 말하는 이의 의도보다, 듣는 이의 의미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 질문이 참 중요하다고 본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자신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질문하며 신중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최근 본 인물로 안성재 셰프님 같은 분이 아닐까. 자신의 인식과 더불어 상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며 물어보시니까.



결국 인간관계는 아무리 자신이 떠들고, 좋은 마음을 지녀도 상대가 해석하는 세상 속에서 종결된다. 굳이 힘쓰거나, 애쓸 필요도 없다. 아니면 아닌 거다. 괜스레 손으로 잡고 있어도, 때가 되어 격차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 손마저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2. 나약한 인간의 본능

앞서 주장한 문장이 있다. '자신조차 자신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 문장의 연장선이다. 나약한 인간이 존재한다. 자신을 모르기에, 남들의 좋은 모습, 멋있는 모습들을 상상하며 카멜레온처럼 연기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체형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다면 어떨까?' 우리 삶, 자연도 마찬가지로 단순 자유로 이루어져 보이지만 많은 이치와 질서로 만들어졌다. 이런 질서를 모르고 날뛴다면 머지않아 공허함을 느낀다. 나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휘둘리는 삶으로 시작하는 삶은 멈추려고 애쓰지 않으면 삶 자체가 휘둘리는 삶으로 정의된다. 정작 본인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해도, 자신의 영혼이 속삭이며 잘못됨을 알려주게 된다.



흔들림이란 스스로에게도,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도 무척 중요하다. 그런 타인을 마주한다면 당장 기대를 꺼라. 그는 또 언제 흔들릴지 모른다. 이어 자신의 흔들림을 보라. 자신이 그런 인간이라면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기 마련이다. 자신부터 꿋꿋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흔들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여유가 된다면 바람을 막아주면 된다.



자신이 흔들리면서 상대의 흔들림을 막아준다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에 대해 탐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세상에 수많은 유혹들이 자신의 욕망을 끊임없이 흔들게 내버려 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렸던 만큼,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꽃의 종류를 잘 모른다. 인간관계는 꽃과 같다. 사계절은 내 어리석음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사계절을 보낼 때마다 꽃의 종류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만큼 세상의 변화를 용감하게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굳이 많은 대중들이 사랑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 없다. 그들도 자신의 기차가 오면 언제든 이별할 수 있다. 웃으며 보내주라. 인간으로서 가진 두 눈을 상대를 위해 쓰지 말고, 상대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을 향해 써라.



때론 고독하고, 때론 허무하다. 이런 시간은 다소 낯설지만, 훌륭한 성장의 비료이자, 삶의 나침반이다. 인간이 소중하다면 자신부터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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