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2인 딸이 연극영화과를 준비 중이라고 하면 날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 “아빠 끼를 물려받았네”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노래와 춤에 일가견이 있던 나는 어릴 때부터 무대 체질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4살이던 나는 문틈으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신나는 유행가를 불러 장례식 분위기를 뒤집어 놨다고 했다. 중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교탁 앞으로 나가 노래 부르는 일은 주로 내 몫이었고, 소풍 때는 레크리에이션 진행을 줄곧 도맡았다. 대학 때 ivf 활동을 할 때도 나는 끼쟁이였다. 당시 핫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개사해 춤을 추었고, 매주 있던 LGM 찬양 시간에 새로운 율동을 만들어 발표했다.
“당신은 사람들이 시기하기 좋은 스타일인 것 같아.” 언젠가 아내가 내게 해줬던 이야기다. 그랬다. 끼가 많았던 나를 좋아하고 환영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불편해하거나 꺼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누군가의 불편한 시선, 못마땅함을 견디는 일은 천성적으로도 예민하고, 눈치를 많이 보던 나에게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점점 분위기를 살피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법을 몸에 익히게 되었다.
최근 매일 글쓰기를 하면서 SNS에 이전보다 자주 글을 올린다. 내 글이 다른 이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했고, 인정과 칭찬의 댓글은 쓰기에 자신감을 더해줬다. 그런데 속으로는 ‘이렇게 자주 올려도 되나?’란 생각을 한다. 쫄보 본능이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의 소개로 최근 아이키가 나오는 짧은 동영상을 보았다. 댄서들이 아이키에 대해 ‘틱토커’라고 공격하자 아이키는 불쾌한 기색을 잠시 드러냈다. 그러나 곧바로 “근데 생각해보니까 나 틱토커 맞아”라며 특유의 호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상대의 공격에 변명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인정하고 수용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 짧은 영상을 보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의 말이 꼭 날 위한 응원가 같았다. ‘그래. 난 원래 표현하기 좋아하는 사람 맞아. 관심받고 싶은 사람 맞아.’ 누구를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글을 쓴 것도 아니고 내 생각과 감정, 내 이야기를 올리면서 난 왜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걸까.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걸까 생각했다.
오래전에 썼던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SNS에 링크를 올렸다. 가끔 블로그 주소를 묻는 이들이 있었지만 공개하기 조심스러워했었다. 나만 보려고 쓴 글이 아닌데 굳이 감출 필요가 있겠나 싶어 용기를 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글로 나를 표현하고, 글로 사람들을 만나고, 글로 소통하려는 욕망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 어릴 때부터 말이 많아 수다쟁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이제는 글을 많이 쓰는 쓰다쟁이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