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의 집에 초대받거나, 방문할 때 나는 가장 먼저 그 집의 서재에 꽂힌 책들과 음반과 오디오에 눈이 간다.
얼마 전 지인의 집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역시 내 눈은 정면에 위치한 스피커를 향했다. 음악을 들어봐도 좋은지 묻고는 내 핸드폰에 블루투스를 연결해 다양한 음악을 들어보았다. 소리가 훌륭했다. 특히 중음과 고음이 좋은 스피커였다. (비싼 스피커는 아니었지만)
오늘 아침 나는 평소처럼 음악을 틀어 놓았다. 그런데 우리 집 오디오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구렸다. 그것도 너무 구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 스피커로 음악을 듣기 전까지 나는 우리 집 오디오 소리가 구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집을 다녀온 뒤로 우리 집 음악이 시원찮게 들린다.
핸드폰을 꺼내 이전에 사고 싶던 스피커 가격을 검색한다.
당장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 그러나 스스로 마음을 추스른다.
결혼 전 아내와 혼수 장만을 놓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결혼하면 꼭 사고 싶은 것이 있었느냐는 내용의 대화였다.
나는 주저 없이 좋은 오디오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혼수품을 장만하면서 나는 당시 저가의 일체형 오디오를 샀다. 그마저도 얼마 못 가 고장이 나서 폐기 처분해야 했다.
그 후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별도의 장치 없이 살았다.
간사 시절에도 나는 오디오와 스피커, 턴테이블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지방회의 재정 상황은 열악했고, 간사들의 낮은 페이 지급률을 보며 나의 바람은 사치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 깊숙한 곳에 욕망을 쑤셔 넣었다.
간사를 그만두고 울적했던 나는 아내에게 오디오를 사게 해 달라 부탁했다.
그런데 막상 저지르려니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때마침 동기 간사였던 목사로부터 성도가 기증한 안 쓰는 스피커가 있는데 필요하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넙죽 받았고, 그 스피커를 핑계로 저렴한 앰프를 구매했다.
얼마 후 중고나라에 올라온 턴테이블까지 구매해 그렇게 내가 원했던 나름의 오디오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모아 온 LP를 듣고, 오랫동안 모아 온 CD들을 들으며 소확행을 맛보고 있었다.
그런데 만족이 불만족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의 간사함, 변덕스러움을 마주하며 복잡다단한 하루를 보냈다.
불만족과 불평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오는구나 싶었다.
내 떡만 볼 때는 만족하던 마음이 남의 떡을 만난 이후 불만족으로 바뀌었다.
나보다 더 가진, 더 윤택한, 더 앞선 이들을 통해 나의 연약, 부족, 결핍에 눈을 뜨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비교가 불만족을 낳고, 불만족은 탐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몸에서 진한 가인의 피 냄새가 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