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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쟁이 Oct 25. 2021

편식하는 사람

지인들 몇 사람과 점심 약속이 있다. 3년 전쯤 함께 만난 뒤 오랜만의 회동이다. 그중 한 사람이 내일 자기 집에서 식사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여러 번 만류했는데도 다 준비해 놓았으니 편하게 오라고 한다.

그런데 친한 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식사하자고 할 때 종종 긴장이 된다.

다름 아닌 메뉴 때문이다.

나는 가리는 음식이 많다. 특히 생선류는 입에도 대지 못한다. 어릴 적 엄마는 생선을 억지로 먹이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다. 그러나 그때마다 먹은 음식을 토해냈고, 엄마는 그런 날 꾸짖으시곤 했다.


생선을 먹지 못해 민망할 때가, 심하게는 수치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몇 가지 생각나는 일들이 있다.

대학 때 함께 자취하던 후배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일이다. 후배를 많이 아꼈고, 그가 군에 가 있을 때에도 후배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릴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후배 어머니는 귀한 손님이 왔다며 푸짐한 저녁상을 내오셨다. 예상했겠지만 메인은 생선 요리였다. 생선찌개와 구운 생선 요리. 어머니께 괜찮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본인이 더 당황해하시며 급하게 고기를 구워주셨던 기억이 난다.


신학교 진학으로 전주를 떠날 때도 교회 집사님 몇 분이 그동안 수고했다며 식사를 대접해 주시겠다고 했다.

약속 장소는 고급 횟집이었다.

들어가면서부터 마음이 괴로웠다.

못 먹는 나도 민망하지만, 대접하는 분들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그 앞에서 빨리 식사 자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단체로 횟집에 갔다가 혼자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불러 먹었던 일도 있었다. 배달하는 분이 내 앞에 짜장면을 놓을 때 그 썰렁한 공기, 주변의 싸늘한 시선이 얼마나 불편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릴 때부터 사내자식이 아무거나 잘 먹어야지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바닷가가 고향인데 왜 생선을 못 먹느냐는 질문은 고향을 떠난 이후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다.

편식으로 인해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목사가 되고 난 후에는 심방 가면 성도들이 대접하는 대로 아무거나 잘 먹어야 하는데 이제 식습관을 바꾸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던 교회 어른들도 많았다.

나도 정말 바꾸고 싶다. 미치도록.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누군가에게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나에게는 줘도 못 먹는 음식이 되는 불편한 상황이 괴롭다.


아들은 날 닮아서인지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못 먹는다.

아들의 편식에 대한 이해, 나 때문이란 자책, 크면서 겪을 아들의 불편함을 생각할 때의 미안함이 교차한다.

나이가 들수록 편식은 점점 더 큰 흉이 되는 것 같아 음식 앞에서 자신감을 잃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내일 만날 지인에게 용기 내어 톡을 보냈다.

식사 자리에서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기는 것보다 미리 커밍아웃을 하는 민망함이 낫다.

다행히 그는 걱정 말라며 닭 요리를 준비했다고 회신했다.

최악은 면했지만 날 초대한 이에게 자칫 무례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안 먹는 건 취향이지만 못 먹는 건 문제가 되는 세상에서 어쩌다 소수자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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