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후딱 먹고 바쁘게 움직인다. 침묵 기도 심화 과정 수업이 있는 날이다. 줌에 접속하자마자 곧바로 모임이 시작됐다. 오늘은 성공회 조정기 신부님의 ‘렉치오 디비나’ 강의와 실습이 있는 날. 강의 후 개인 묵상과 공동체적 묵상, 중간에 두 차례 소그룹별 나눔을 포함해 총 4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개인 묵상 시간에는 곤히 잠들었다. 종소리를 듣고서 간신히 눈을 떴다. 이전에는 기도 중에 잠들면 꺼림칙했는데 이제는 하도 졸아서 아무렇지 않다. 이렇게 무뎌지는가 싶다. 공동체적 묵상 시간에는 졸지 않아 다행이었다. 묵상 본문은 마가복음 10장 46-52절, 여리고의 맹인인 바디매오 이야기다. 신부님이 본문을 두 차례 읽어주시는 동안 모두 눈을 감고 차분하게 귀를 기울였다. 마음에 어떤 구절이 담기는지 찬찬히 살피면서.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신부님이 두 번째 낭독하실 때 유독 이 구절에만 밑줄이 그어지는 것 같았다.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잠시 나누는 시간에 대부분 예수님과 바디매오와 관련한 단어, 문장을 나눴다. 찜찜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이 구절을 쥐고 묵상과 기도 안으로 들어갔다. 바디매오의 외침을 제압하려는 무리를 묵상했다. 잠잠하기를 바라는 주변의 소리가 무엇일지 살폈다.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내게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 하지만 냉소와 회의, 짜증 섞인 말투가 거슬렸던 그가 불현듯 생각났다. 그를 만날 때면 ‘그만 좀 하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만 되뇌었다.
그의 목소리가 잠잠해지기를 원했다. 평정심을 깨뜨리는 말들을 밀쳐내려 했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소리에 멈추셨다. 그리고 돌아보셨다. 소음으로 여기던 소리를 주님은 신음으로 들으셨다. ‘주님을 찾고 있었던 것이구나’. 찢어지는 소리는 찢긴 마음 때문이었다. 나의 평화를 깨뜨린다는 이유로 음 소거를 하고 싶었던 이기심이라니.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자기인 줄도 모르는 어리석음이라니. 침묵해야 하는 건 그가 아니라 나라는 걸 침묵이 가르쳐 주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