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장인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저녁 약속을 급하게 취소하고 수서역으로 가는 SRT 표를 예매했다. 천안아산역에 미리 도착해 플랫폼으로 향했다. 정시에 도착한 열차에 올랐다. 좌석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접이식 테이블 위에 가방이 놓여 있다. 옆자리 승객에게 “본인 가방 아니세요?” 물었더니 자기 가방이 아니라고 하면서 출입문 쪽을 바라보는 걸 보니 다른 승객이 가방을 놔둔 채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좌석이 여기 맞으신 거죠?” 옆의 승객은 나와 출입문을 번갈아 보며 묻는다. 나만큼이나 당황한 눈치다. 스마트폰을 열어 표를 확인했다. “4호 차 7D 맞는데요” 상대도 폰을 살짝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자리를 잘못 알고 가방을 두고 간 사람이 빨리 와서 상황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이전에도 이런 일을 종종 겪었다. 다른 사람이 내 좌석에 앉아 있는 황당한 상황. 처음에는 자기 자리 맞다며 우기다가 표를 다시 확인하고는 열차를 잘못 타거나 칸을 잘못 찾았다며 비켜주는 일들 말이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출발 전의 이런 불필요한 작은 소동이 있으면 괜히 찜찜하다. 내 앞 간이 테이블 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방 주인이 빨리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다시 폰을 들여다봤다. ‘7호 차 4D’ 분명 내 좌석이 맞았다. 조금 더 위쪽을 올려다보니 ‘11월 2일(화)’라고 적혀있다. ‘가만. 오늘이 며칠이지?’ 허걱. 아직 10월인데 다음 주 표를 예매한 셈이다. 후다닥 가방을 챙겨 열차 칸을 빠져나왔다. 승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예매를 담당하는 분을 호출해 주신다. 이런 일을 자주 겪어 보시는 듯 능숙하게 티켓팅을 도와주신다. 상냥한 얼굴로 “열차 안에서 발권하는 경우는 50 퍼센트 추가 수수료가 붙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묻는다. “네. 어쩔 수 없죠”.
다시 예매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는 ‘4호 차 12D’. 좀 전에 잘못 앉았던 자리를 지나쳐야 진짜 내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이럴 땐 핑계를 찾는 게 상책이다. 오랜만에 SRT를 탔기 때문이라고, 장례식을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서 그런 거라고. 그래 그런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