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버지는 날 데리고 자주 외출하셨다. 자전거 안장 앞에 설치된 아이용 간이 의자가 내 전용 좌석이었다. 조금씩 키가 자라자 안장 뒤 짐받이로 자리를 옮겼고, 내가 앉던 간이 의자는 동생의 몫이 되었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놀이기구 같았다. 평지에서는 적당한 속도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내리막에서는 빠른 속도를 즐기며 힘찬 바람을 느꼈다. 큰 도로와 좁은 골목들을 지나 군산 시내 곳곳을 구경하는 건 어린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었다. 명산동 골목을 지날 때면 아버지는 자전거를 멈추시고는 길가에 돋아난 풀잎을 꺾어 입에 가져다 대고 연주를 시작하셨다. 유일한 청중인 나와 동생 앞에서 아버지는 한참 동안 풀피리를 부셨다. 꽤 근사한 연주였다. 하도 신기해 나도 아버지를 따라 풀잎을 물었지만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우리 아빠는 풀피리를 엄청 잘 분다”. 동네 아이들을 만나면 나는 아버지의 풀피리 실력을 자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학교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부모님이 새로 시작한 가게가 잘 안 돼 다시 학교 근처로 이사 올 때까지 1년여를 아버지의 자전거와 함께 했다. 그 뒤로 아버지의 자전거를 탈 일이 점점 줄었다.
중 3 때 야간 자율 학습을 시작하면서 밤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있게 됐다. 나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자전거를 타고 날 데리러 오시겠다고 했다. “피곤하실 텐데 안 오셔도 돼요. 아버지 힘드니까 그냥 버스 타고 갈게요.” 여러 번 만류했지만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걱정돼 한 말이 아니었다. 수치심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아들을 데리러 온 아버지는 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신사용 고급 자전거도 아닌 고기를 실어 나르는 검은색 큰 짐 자전거, 짐받이에 굵은 고무줄이 감겨있는 볼품없고 투박한 자전거에 올라타야 한다는 게 창피했다. 내 나이 16살. 한참 외양에 신경을 많이 쓰던 때였다. 친구들과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을 향해 걷는 동안 아버지를 찾느라 내 눈은 바빴다. 내가 먼저 아버지를 찾아야 했다. 아버지가 날 발견하고 이름을 부르면 하교하던 친구들이 모두 날 돌아봤고 그때마다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아버지가 정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계시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일부러 친구들이 다 집에 가고 난 뒤 한참 뒤에 걸어 나올 때도 많았다.
밤을 가르는 자전거를 타고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길. 아버지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셨다. Ray Charles의 “l can’t stop loving you”를 나는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서 배웠다. 얼마나 크게 부르셨는지 밤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볼 정도였다. “아버지 조금만 작게 불러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요” 짜증 섞인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노래는 계속됐다.
중학교 졸업할 때쯤 군산 외곽으로 이사했다. 고등학교는 우리 집 반대편에 있었다. 학교를 가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가 자주 있는 게 아니라 등교 시간에는 동네 중, 고등학생들로 붐볐다. 거기에 일터로 향하는 어른들까지 태운 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버스 손잡이를 잡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차창을 바라보다 아버지와 마주 치곤 했다. 버스 반대 방향으로 지나가는 무거운 자전거. 새벽 장에서 사 온 물건을 한가득 실은 아버지의 자전거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뒤돌아보았다. 내가 부끄러워 한 자전거 위에서 힘겹게 페달을 밟고 지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때면 눈물이 핑 돌았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입대할 때쯤 우리 집에 첫 차가 생겼다. 미니 승합차인 ‘다마스’. 내 눈에는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이즈의 작은 차였지만, 더 이상 자전거를 타시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10년 가까이 타던 ‘다마스’를 처분하고 7인승 차량인 ‘레조’로 바꾸셨을 때 누구보다 기뻤다. 작고 가벼운 ‘다마스’보다 훨씬 크고 튼튼한 차였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내게 아버지는 “이제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길 텐데 차가 필요할 거야. 이 차는 네가 타고 다녀라” 라며 키를 넘겨주셨다. 얼마 타지 않아 새 차나 다름없었다. “나는 자전거 타면 돼” 그렇게 아버지는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셨다. 아버지가 차를 운전한 건 10년이 조금 넘는다. 그와 비교가 안 될 만큼 긴 세월을 자전거와 함께 하셨다.
부모님 댁에 방문해 잠을 자는 날이면 이른 새벽, 아파트 경비를 하시는 아버지가 문밖을 나서는 소리를 듣는다. 자전거 끄는 소리, 자전거로 철문 문턱을 넘는 소리, 페달을 밟는 소리. 급하게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인사를 드린다. “뭐 하러 일어났어. 더 자” 말씀하시고 빙그레 웃으신다. 사라지는 자전거를 바라보며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노랫소리가 들렸다.
“I can’t stop loving you…”
방에 들어와 다시 누웠다. 눈을 감았는데도 검은 자전거 한 대가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