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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쟁이 Nov 18. 2021

음악, 몸으로 듣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처형 덕에 가끔 클래식 공연에 가  기회가 있었다. 당시 처형은 군산시립 교향악단에 속해 연주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느  좋은 공연이 있다고 연애 중이던 나와 아내를 초대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초청 협연이었다. 클래식 연주회가 처음이라 어색했고, 결혼 전에 처댁 식구들과 함께한 자리라 긴장이 됐다. 공연이 시작되자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빠르게 전개하다가 천천히,  있게 터치하다가 여리게. 연주자의 능숙한 전환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졌다. 막바지에 이르렀을  그는  전체를 사용해 건반을 두드렸다. 손가락만이 아니라 어깨, , 허리, 엉덩이를 들썩거렸고, 발은 페달을 밟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듣는 내내 덩달아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직접 현장에서 듣는 음악은 달랐다.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곡이 귀와 가슴만이 아닌 온몸으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공연을  마치고 나올   남성이  옆을 지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와! 음악으로 샤워한  같다.” 그날 공연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음악으로 집단 샤워를  그날, 나는 그의 음반을 구입했다. 미하일 페투호프라는 피아니스트였고, 그가 연주한 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검색해 보니 콘서트 날짜가 2002 10 28일이다. 19년이 지났지만 황홀했던 연주가  흥분과 감격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일곱 살 때 시각 장애인이 된 에릭 호퍼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다 잃어버렸지만, 아홉 살 때 아버지를 따라 간 뉴욕의 콘서트홀에서 들었던 베토벤의 교향곡 9번 만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날 아버지는 나를 택시에 태워 뉴욕의 콘서트 홀로 데려갔다. 평상시에는 차분했던 아버지가 이날만은 이상하게도 들떠 있었다. 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했고, 우리가 들으려 했던 베토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베토벤이 귀가 멀었을 때 작곡한 교향곡 제9번은 천상의 멜로디로 된 태피스트리”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특히 제3악장은 숭고하다고 하면서 그중 일부를 콧노래로 부르기도 했다. 콘서트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는 기억에 없다. 제9번 제3악장이 연주될 때 아버지는 내 팔을 움켜잡았고, 나는 날개라도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에릭 호퍼,『길 위의 철학자』(이다미디어, 2014)


모든 음악을 다 기억하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분명 시간이 오래 지나도 잊지 못하는 음악이 있다. 때로 몸은 귀보다 잘 듣고 뇌보다 많은 걸 기억한다. 음악으로 샤워했던 나도, 팔을 움켜잡던 아버지의 촉감을 느낀 에릭 호퍼도 음악을 몸으로 흡수했다.

오디오를 켠다. 메마른 가슴을 적셔줄 음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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