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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쟁이 Apr 19. 2022

모든 음악, 모든 기도

자정을 향해 가는 밤. 내가 좋아하는 리클라이너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중국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인 주 샤오메이가 쓴 <마오와 나의 피아노>를 읽는다. 거실에는 Wilhelm Kempff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가 고요하게 흐른다.

눈과 귀가 각자 다른 피아니스트를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선배의 추천으로 듣기 시작한 클래식 음악을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줄이야.

물론 클래식 음악만 듣는 건 아니다. 오늘 아침 설거지를 할 때에는 이어폰을 꽂고 듀란듀란의 노래를 들었다. 10대와 20대를 수놓은 팝 음악은 오래된 사진만큼이나 귀중하다.

며칠 전, 누군가에게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니 “어떤 음악을 주로 들으세요?”하며 물었다. 클래식을 듣는다고 하니 “고상한 음악을 들으시네요”라고 말했다. 팝 음악을 들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팝 음악보다는 클래식 음악이 더 수준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의 비교우위를 언급하는 책을 읽은 적도 있다. 정말 그럴까? 더 수준 있고 고상한 음악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 걸까?

어느 때는 클래식 음악에 위안을 얻지만 어느 때는 팝이나 가요, 재즈에 위로를 얻었다. 내 입이 한 종류의 음식에 만족하지 못하듯, 내 귀는 한 장르의 음악에 만족하지 않는다. 다채로운 음악 덕분에 풍요로운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다. 본디 음악에는 귀천이 없다고 믿는다. 음악을 귀천으로 나누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기도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태도를 가진 이들을 만난다. 지금이야 침묵 기도에 익숙하지만 오랜 시간 소리 내는 기도와 방언 기도를 해왔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직도 그런 방식으로 기도하냐며 핀잔하는 이가 있었다. 신대원 영성 수업 시간에 교수님은 침묵 기도가 소리 내는 기도에 비해 훨씬 더 고차원적인 기도라고 말씀하셨다. 최근에도 부르짖는 기도보다 침묵 기도가 훨씬 더 고상하고 수준 높은 기도라 말하는 사람을 보았다. 침묵 기도는 클래식 음악과, 소리 내는 기도는 가요나 팝 음악과 등가가 매겨지는 것 같았다.

더 나은 기도가 존재한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나님도 그런 기준으로 기도를 평가하실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기도 생활을 한 건 아니지만 큰 소리와 방언 기도를 통해서도, 침묵 기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했다. 두 기도가 서로 연결되고 맞닿아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다양한 음악이 풍요로운 마음을 빚듯이, 다양한 기도가 균형 잡힌 영혼을 만드는 게 아닐까.

모든 기도는 아름다운 기도라고 이 연사 두 주먹 불끈 쥐고 힘차게, 힘차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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