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까지 건강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선배들이 몸이 안 좋다거나 건강에 신경 쓰는 걸 보면서 나이 들면 저렇게 되나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40대를 넘어서면서 허리가 아프고, 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전과 다르게 체력 저하를 느꼈다. 청년들과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 일정들을 동시에 소화하던 나는 이제 제 때 자야 하고, 일정이 많으면 금방 방전되고 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약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약해지지 않는 게 있다. 나의 에고는 갈수록 약해지기는커녕 더 세지는 것 같다. 이전에는 쉽게 물러나고 양보하던 것도 이제는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데’ 등 고집을 피우고 자존심을 내세운다. 몸은 약해지는데 나의 에고는 절대 약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이가 들면 자존심이 세지는 걸까? 이전보다 에고가 강해진 걸까? 왜 그전에는 강한 에고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던 걸까? 몸은 약해지는데 비해 약해지지 않는 자존심 때문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에고가 어느 날 갑자기 강해진 것은 아닐 게다. 자아는 이전에도 분명 강했다. 다만 몸이 약해졌기 때문에 내 강한 에고가 더 선명해졌다. 몸이 건강할 때나 약할 때나, 나이가 적을 때나 많을 때나 인간은 모두 강한 에고를 가지고 산다. 젊고 튼튼할 때는 안과 밖이 등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늙고 연약해질 때 내 안의 강한 에고는 더 잘 드러났다.
나이가 들수록 그동안 잘 노출되지 않던 내면이 드러나고, 거칠고 질긴 내면의 질감을 더 잘 느끼게 된다. 젊었을 때 인식하지 못하고 크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던 완고한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다뤄야 할 때가 성큼 다가왔다.
나이가 들면 약해진다. 그런데 몸이 약해질 때 내면도 함께 약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안팎의 조화가 순리이고 성숙이란 생각을 해 본다. 건강한 몸속에 있을 때보다 약한 몸속에 있을 때 강한 에고는 더 잘 관찰될 테니 발견된 에고를 잘 다루고 손질해보고 싶다. 몸의 속도만큼 나의 에고도 함께 연약해질 수 있기를.
어제 읽은 책에서 ‘중심 잡힌 연약함’이란 문구를 보았다. 내 지향을 잘 나타낸 멋진 표현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머릿속에 그 문구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카톡 상태 메시지에도 옮겨 적었다.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이 날이 갈수록 단단해졌으면 그리고 나의 에고는 더 약해졌으면.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