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는 직원
몇 달 전, 백신 패스도 없었고 사적 모임 거리두기 인원이 최대 10명까지 였었던 때에 회사에서 팀 회식을 진행했다. 코로나 문제도 있고, 회식을 싫어하는지라 웬만해서는 거절하지만 자주 하는 회식도 아니었기에 그날만큼은 왠지 참석하고 싶었다.
퇴근하고 해산물 파는 가게로 갔다. 친한 동료 옆에 앉았고 내 앞에는 팀 책임자인 상무님이 앉았다. 음식이 차례로 나왔다. 주위에 있던 분들 모두 00 씨와는 처음 술을 마시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자주 마시자고 술을 건넸다. 나도 오랜만에 동료들과 웃으며 기분 좋게 술과 음식을 먹었다. 그때 앞에 앉아있던 상무님이 이런 말을 했다. "원래 00 씨 안 부르려고 했어~ 좀 예민하잖아, 이런 자리는 **씨(옆에 있는 동료)같이 털털한 사람들이랑 와야 돼~"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이제는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안다. 상사들의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는 정말 웃지 않는 직원. 성희롱을 성희롱이라 말하는 직원. 착한 척, 귀여운 척, 친절한 척하지 않는 직원. 그게 바로 나니까.
사회생활 만렙인 누군가한테는 사회성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겠다. 알게 뭐람. 사람 사는 세상, 어떻게 살지 결정하는 것은 나 하나뿐인데.
그들이 말하는 예민하지 않은 직원이란 별 말 같지도 않은 농담에 웃고 넘어가 주는 직원이다. 그게 성적인 농담이던, 남을 깎아내리는 농담이던 그냥 웃고 맞장구 쳐줄 수 있는 사람.
"제가 예민해요 상무님?"
"그런 편이지. 좀 털털해야 술자리 같은 데서 장난도 좀 치고 그러지"
털털하다는 표현의 의미까지 새로 정립해줘야 할 듯 싶다.
장난치고 싶으면 술 먹고 집 가서 본인 아들, 딸들 한테나 하시지. 왜 남의 딸한테 장난을 친다는 건지.
불편했다. 같이 회식 가자고 불러놓고는 앞에 앉혀서 뭐 하는 건지. 뭐 엄밀히 말하면 내 선택으로 오긴 했지만.
"예민이 아니라 정상인 거죠 ㅎㅎ 상대가 선을 넘으니 그러지 말라고 얘기를 하는 거고요"
"근데 나 같은 사람들이 농담할때 상대가 기분 나쁠지 안 나쁠지 어떻게 판단하냐? 몰라서 그러는 거야 몰라서"
모른다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도피처가 되었다. 나에게는 이해의 명분이기도 했다. 40-50대가 젊었던 시절, 직장문화에서 당연시되고 통했던 농담들이 지금은 사회적 문제로 보는 시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저런 말을 할 수 있다. 아니, 할 수 있긴 하다. 뭐, 무려 대통령 후보라고 나온 사람 가족도 미투 운동이 돈을 안 찔러줘서 벌어진 거라는데,, 한국 사회의 인식이 참 멀었다 싶다. 그건 그거고. 어떤 회사를 가던 듣게 되는 이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와 회피성 말 조차 앞으로 받아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상식적으로만 행동하시면 돼요. 그것도 모르겠다면 공부하세요. "
"공부까지 해야 돼?(어이없는 웃음)"
"언제까지 모른다고만 하실 거예요? 부하직원이 모르는 거 있음 공부하라고 하시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인터넷만 검색해도 수만가지 정보가 쫙 나오니까 그거 보면서 공부하세요. 그런 것들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인터넷 검색.. 야 그렇게 까지 해야 되냐?"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하셔야죠. 그래야 제가 예민한 게 아니라 정상적인 반응이었다는 걸 이해하죠. 뭐, 귀찮으면 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고소당하는 건 농담하는 사람들이지 제가 아니니까요 ^^"
할 말이 없어진 상무님은 제일 끝에 가만히 앉아있는 차장에게 말을 걸었다. 나의 글에도 여러 번 등장한, 우리가 나누는 이 대화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기도 하다.
"0 차장, 자네도 요즘 젊은 사람들 생각을 잘 이해하고 다가갈 필요가 있어. 자네식으로 하는 건 요즘 세대랑 안 맞아! 그러니까 자꾸 부딪히지! 자네도 방식을 바꿔보라고, 응?"
현세대와 사회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상사가 본인과 같은 부하직원을 다그치는 모습이라니. 씁쓸했다. 모른다는 핑계를 받아주고 싶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모른다면서 이해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 '모름'이 부끄러움이 아닌 '핑계'로 쓰인다는 것. 본인들의 무지한 시선을 정당화해버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