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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영 Oct 19. 2024

조금만 천천히, 길게 보고하라(feat. 운동)

직장인 2개월 헬린이에게 관장님의 조언

여느 때와 같이 직장인의 삶을 마치고 하체 운동을 하는 날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위로 올리는(레그 익스텐션) 운동을 마치고, 두번째로 머신 중량 스쿼트를 5세트 마친 뒤 앉아 계시는 관장님께 가볍게 말을 붙여봤다. "관장님 오늘도 역시 재밌게 운동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오늘은 여느 때처럼 힘이 모자라거나 근육이 찢어질 듯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심장이 쿵쾅되며 진정되지 않네요. 심장이 운동할 때 브레이크를 밟기도 하나요?"


평소 하이텐션으로 유쾌한 관장님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듯 갑자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회원님께서 운동을 처음 시작하신 뒤로 꾸준히 나오시고 모범생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아까 회원님이 머신으로 들어 올린 무게(140kg)는 운동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기간에 비해 과하게 무거웠어요. 회원님의 운동은 근육의 이완과 수축을 느끼며 근성장이 목표가 아니라, 무거운 무게와 힘겹게 싸우는 것처럼 보였어요. 또한 회원님이 러닝머신 위에서 숨이 넘어갈 것처럼 달리는 것을 봤을 때는 직장에서 일하고 온 분 같지 않고, 집에서 휴식 후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 같았어요. 운동을 어느 강도로 했을 때 일상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 꼭 생각해 보시기 바라요. 어느 날 갑자기 운동을 놓으실 것 같아 걱정됩니다."


내가 예상했던 답변은 '다리 근육이 크기도 하고, 펌핑하는데 피를 많이 필요하여 심장이 부단히 노력합니다'와 같이 몸 상태를 설명해주실 줄 알았다. 이것은 과연 동문서답과 우문현답 중 어느 것에 가까울까? 되돌아보니 관장님이 평소에도 내가 운동하는 것을 세심히 지켜보며, 본인의 경험을 녹인 조언을 장전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의 노력칭찬하며 존중해 주셨고, 나를 위해 진심 어린 말을 해준 것처럼 느껴져 굉장한 감사함을 느낀다. '심장이 왜 이리 뛰어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너무 열심히 하면 부러져요'라는 내 상황에 맞춘 현명한 답을 해주셨던 것이다.(=우문현답)


관장님이 말씀을 하는 도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생각의 나뭇가지들이 쭉쭉 뻗어 나아갔다. 직장인의 삶과 퇴근 후 운동은 삶을 꽉 채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운동도 결국 기회비용이다. 단순 시간에 국한되지 않고, 열심히 운동한 만큼 몸이 회복할 시간도 필요하다. 또한 나는 운동을 제외한 자기계발(예: 독서, 글쓰기)도 하고 싶지만, 잉여 자원이 없으니 욕심일 뿐이다. 몸이 지치면 정신도 따라서 지치는 것일까. 집에 와서 밥, 설거지, 씻기만 해도 밤 22시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기 바쁘다. 뇌가 도파민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인지 파업에 돌입한 건지 시간은 훅 지나버린다. 오늘도 자기계발에 시간 투자하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하며, 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잠을 청한다. 그리고.. 이는 반복된다.


작전을 변경해야 함이 확실하다. 평일 직장을 다니며 강도 있는 운동에 2시간 이상 투자하는 것을 나는 버틸 수 없다. 인정한다. 그럼 어떻게?


단거리 마라톤(5, 10KM)을 뛰며 든 깨달음이지만, 자기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대부분 뒤처진다.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더 빠르게 뛰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고 본인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딱히 빨리 달리지 않아도 시간이 길어지면 내 실력에 자리는 찾아가게 되어 있다. 이는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매 순간 최대로 쏟아부어 달리는 나보다, 꾸준히 컨디션을 조절하는 내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욱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라톤과 운동은 옆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나와의 경쟁이라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나는 무엇에 쫓기며 마음이 급했던 걸까. 몸으로 얻은 귀중한 깨달음을 왜 잊고 있었을까. 코 앞에 번아웃이 떡하니 서 있었는데.


사실 어느 정도는 안다. 부모님이 연로해 가시며 현재 삶에 대한 불만족,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떠오른다. 이 사실들이 가져다주는 불안에서 도망가기 위해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고,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무리하는 삶이 더욱 지속되었다면 어땠을까? 운동을 쓸모없는 것이라 여기며 놓아버리거나, 운동에 지나치게 치우쳐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놓칠 것이다. 건강이나 내 인간관계로 시작하여 나를 좀먹기 시작하겠지.


'단 기간 근성장'에서 '꾸준한 운동습관'으로 목표를 수정하려 한다. 나는 선수는커녕 바디프로필도 아직 생각이 없고, 앞으로 건강한 몸을 갖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PT 금액에 뽕을 뽑고 싶었던 마음을 설득하고, 자기계발 시간을 보장하라는 노조와 협의한다.


단순하지만 시간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워보자면, 운동 시작과 끝은 무조건 1시간 내로 한다. 외적인 요인(응급상황, 천재지변 등)이 아니라면 시간은 지키려 한다. 몸 풀기 10분, 운동 50분이다. 이대로만 하면 운동 시작 19시 기준 20시에 마치고, 식사와 씻기까지 마무리하면 21시면 족하다. 야호, 취침시간까지 2시간은 확보 가능하다! 물론, 향후 세부 사항은 조정해야겠지.


관장님의 말씀에서 시작된 생각 정리가 내 인생에 중요한 지지대가 되어줄 것 같아 기대된다. 나름대로 관장님께 감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고, 그 사람이 삶을 운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관장님도 그러할 수 있지 않은가.


문득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종종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문제를 알아채더라도 해결책을 스스로 찾지 못할 때가 많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기에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혹은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있다. 타인의 조언이나 책이 제시하는 길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결국, 외부에 지속적으로 자신을 노출시켜 피드백을 받거나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고, 보다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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