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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Mar 18. 2024

초토화된 월요일의 작은 위로

너덜너덜해진 소아과 간호사

월요일 아침 소아과는 전쟁터였다. 2살 누나, 4달 된 동생이 첫 스타트를 끊었는데 남동생 힘이 장사다. 4개월 된 아기 발뒤꿈치에서 피를 뽑는데 어찌나 다리힘이 세던지, 발을 움직이는 방향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4개월 갓난쟁이한테 끌려다니는 신세라니...


게다가 오늘따라 죄다 걷지도 못하는 올망졸망 갓난아이들다. 이런 아가들은 옷이고 기저귀까지 다 벗기고 체중을 재야 해 힘이 두세 배는 더 들어간다. 물 한 모금, 커피 한잔 마실 여유 없이 아침을 보내고 고개를 드니 어느새 12시가 넘어있었다.

1시간도 안 남은 점심시간에는 코칭 연습을 했다. '왜 이렇게 불안하고 여유가 없을까? 자유롭고 단순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때려치우고 시골로 내려갈까?'시답지 않은 대안이었지만 미친년 널 뛰었던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오후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생글거리며 천진 난만하게 꺄륵꺄륵 웃던 아이들은 주사 바늘만 봐도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단순함이 너무 부럽다.

즐거운 순간엔 진심으로 웃고 아프면 목놓아 울고, 그 아픔이 사라지면 또다시 까르르 웃고. 아이들은 지금, 현재를 산다. 매 순간을 느낀다. 재고 따지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불안해하는 미련한 짓을 하지 않는다.


눈 깜빡하니 지나가버린 월요일, 내 방은 마치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처럼 초토화되었다. 치열했던 하루. 방정리까지 마치고 나서야 겨우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었. '오늘도 무사히 지났네. 그래.. 닮고 싶은 아이들을 매일 볼 수 있는 내 공간. 나한테 이만한 데가 없지.' 

커피 한 잔, 그 작은 위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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