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시절, 나는 잠도 못 잘 정도로 예민했다. 왜나하면 점수가 내 인생에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분 1초라도 허투루 쓰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이 불안했다. 때문에 항상 예습을 습관처럼 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문학 시간이었는데, 어쩐지 선생님이 수업하는 내용들이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이었다. 나는 재빨리 언젠가 풀었던 문제집을 꺼내 해설집을 넘겨보았다. 그렇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오답풀이과정까지 모조리 끝낸 문제집의 해답 부분을 그대로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도 정말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말이다.
고3한테 수업시간 50분을 해답지 읽어주는 소리나 듣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한 나는 결국 수학 문제집을 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미 오답까지 다 알고 있는 내게, 해당 수업진행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 지금 뭐하니?”
“수학 문제집 풀어요. 저는 선생님께서 읽어주시는 해답지, 이미 다 읽어봤거든요”
“뭐? 그렇다고 문학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어?”
“저한텐 1분 1초가 목숨 같거든요. 해답지에 있는 걸 다시 듣고 싶지 않아요”
그것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반항, 고3 최후의 발악이었다. 그때 내 마음 속에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였다.
'선생은 인생에 도움이 안 돼'
'절대 선생은 안될 거야!'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인생]
그때의 나는 수능만 잘 보면 인생의 고비는 더 이상 없을 거라 생각했다. 때문에 '문제집 몇 권을 풀었고 모의고사가 얼마나 올랐는지'에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목표에는 한 가지 빠진 문제가 있었다. 막상 대학 원서를 쓸 때 어떤 학과가 적성이 맞을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고민하다 그저 취업이 잘 된다는 컴퓨터 학과에 입학했고 컴퓨터는 참 재미없다는 것, 내 적성에 전혀 맞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그렇다고 별다른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참 무기력한 시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써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 멀쩡하던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 순간 너무 놀라 응급실로 향했고, 눈 망막에 박리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1분 1초가 아까워 숨차게 달려온 나는, 앞이 보이지 않게 되어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 누워 있을 즘에야,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대체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생각해 보니 잘못한 게 분명했다. 내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살아왔던 것. 직무유기였다. 그때부터 나는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도전한다.
[너희는 나를 반짝이게 해]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절대 선생님은 안 될 거라 다짐했건만 마흔이 넘어 한 달에 두세 번 고등학교에 강의를 나간다. 정확히 말하면 '간호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직업인 특강을 나가고 있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너희에겐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래야 본인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어. 그리고 원하는 공부를 하면 인생이 재밌고 다채로워진단다'는 것을 알려주는 어른을 한 명만 만났더라면, 그때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학교에 나가보니 여전히 아이들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이 뭔지도 모른 채 서로의 수능 점수을 경쟁하며 피 튀기게 살아가고 있었다. 의대를 보내려는 대한민국 부모들의 욕심에, 유치원부터 의대 준비반이 있다고 하니 혀를 내두를 정도다.
나는 아이들에게 분명히 말해준다.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 말고 자신이 스스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고. 자기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걸 지금부터 찾아가라고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나다워진다. 그 안에서 편안한 날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