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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Jul 24. 2024

쿨한 고양이와 츤데레(?) 집사의 관계

적절한 관계는 어느 정도 거리일까?

반려묘 양말이와 동거한 지 9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는 미지근한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비결은 서로 절대 침범하지 않는 안전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혹여 한쪽이 선을 넘으면 반대편에서 딱 그만큼 멀어지기에 우리의 안전거리는 늘 똑같이 유지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가면 양말이는 늘 나에게 치댄다. 치댄다는 것은 옆으로 쓰러지는 것을 말하는데 쓰다듬어달라는 무언의 신호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이빨을 닦아야 개운한 나는 눈인사만 하고 바로 이를 닦으러 들어가 버린다. 그러면 쓰러져 쓰담쓰담을 기대하고 있던 양말이는 쿨하게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어서 쓰다듬어주시지?

양말이는 절대 미련을 갖거나 질척거리지 않는다. 이빨을 닦고 영양제를 먹은 후 여유가 생기면, 나는 츄르를 들고 양말이 방으로 들어간다. 츄르를 짜주며 양말이가 원했던 쓰담을 해준다. 골골거리던 양말이는 츄르를 다 먹으면 쿨하게 떠난다. 나 역시 뒤도 안 돌아보고 출근 준비를 하러 나간다.


"양말아~이모 왔어. 이 눔의 자식, 이모가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네.... 쯧"


내가 가장 양말 이를 원할 때는 퇴근 후 현관을 열고 들어갔을 때이다. 가장 보고 싶고 애틋하고 쓰다듬고 싶을 때지만 양말이는 내다보지도 않는다. '네가 안 온다고? 그러면 내가 간다!'


방에 들어가면 양말이는 캣타워 꼭대기에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아직은 반갑지 않은 거다. 내 손맛을 그리워하도록 양말이 코에 손을 갖다 댄다. 냄새를 맡은 양말이가 캣타워에서 내려와 쓰러지면 쓰담쓰담해 주고 뒤로 숨으면... 난 쿨하게 퇴장한다.

안내려온다고? 그럼 안녕~

양말이와 나의 거리에는 이와 같은 원칙이 있다.

1. '아님 말고': 상대에게 서운해하지 않는다.

2. 과잉표현하지 않는다.


퇴근한 나를 맞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보고 싶은 내가 먼저 다가가면 되니까! 다가갔는데 양말이 기분이 영 아니라면?


"아님 말어. 나도 할 일이 많단다"

 

물론 타이밍이 맞아 서로 원할 때도 있다. 그럴 때라도 과한 애정 표현은 하지 않는다. 내 손맛이 좀 과해지면 양말이나 살짝 고개를 돌려 입질을 시도한다. 그러면 나는 정신을 차리고 쓰담을 멈춘다. 때로는 양말이가 나에게 깊숙이 파고들 때가 있다. 그때는 내 코가 간질거려 적정 거리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오해는 말자. 난 양말이를 무지 아낀다)

서로 떨어있자냥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관계가 잘 유지되려면 지켜져야 되는 적정 거리가 있다. 20년의 직장생활 동안, 절친인 줄 알았던 직장동료들이 적정거리를 유지하지 못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것을 자주 보았다.

인연은 불과 같아.
멀면 춥고 가까우면 따뜻한.
선을 넘으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지.
너무 친해지면 함부로 하게 되고,
그럼 헤어지게 돼
-배우 윤여정

우리 뇌는 가까운 사람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까울수록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을 인정해 주고 지켜주는 것, 이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지속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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