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나처럼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들과 미국 국적으로 한국에 파병을 오는 미군들이 함께 일을 한다. 물론 미군이 아니지만 미국 국적을 가진 간호사들도 있다. 그리고 한국인을 제외한 미국인들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5년 한국에 머무르다 떠난다.1년을 있었던 5년을 있었던, 함께 시간을 보낸 동료들이 떠나는 건 늘 아쉽다.
그래서 남은 사람들은 떠나가는 사람들과 새롭게 오는 사람들을 위해 파티를 연다. 뭐, 파티라고거창하게 하는 건 아니고 음식을 주문해 함께 점심을 먹는다.
아무리 간단하게 음식을 주문해 먹는다 해도 메뉴를 선택하고 주문하고 픽업하는 일을 하는 '파티 플래너'가 있어야 한다.파티 플래너는 extra duty 중 하나이고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extra duty가 있다. 말하자면 '부업' 같은 거다.
간호사+파티플래너, 간호사+감염관리, 간호사+손 닦기 관리 등등 모든 간호사는 본업 외 다른 업무를 하나씩 맡는다. 나는 이번에 파티플래너를 맡았다.
병원 동료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나는 17년 차 간헐적 단식러로, 병원에서 단 한 번도 점심을 먹은 적이 없다. 점심도 안 먹는 유일한 사람이 점심을 준비한다고? 모두가 의아해했다. 이걸 선택할 때는 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먹는데 진심인 선생님들이 메뉴도 선정해 줄 것이고 픽업도 도와줄 것이니구색을 맞추려 '이름만 올려놓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준비하는 첫 파티에 큰 난관이 생겨버렸다. 도와줄 거라 믿었던 선생님들이 모두 여름휴가를 떠났다. 게다가 음식을 주문하려고 했던 식당들마저 여름휴가로문을 닫아버렸다. 8월 1일은 파티를 열기에 최악의 날이었다.
'망했다. 괜히 파티 플래넌지 뭔지 한다 그래가지고... 나 때문에 파토 나겠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차선책을 생각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다른 분식집을 섭외하고 메인 메뉴를 대체할 식당도 찾았다.
'이게 뭐라고 일하는 것보다 훨씬 피곤하네'
파티준비로 고단해 며칠 동안 숙면을 했을 정도다. 파티 당일, 출근하는 길에 시장에 들러 닭강정, 김밥, 수박, 만두를 챙겨 차에 실었다. 혼자 짐을 들고 3번을 왔다 갔다 하느라 출근하기도 전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다행히 몇몇 동료들이 픽업도 도와주고 상차림과 뒷정리를 도와줘 파티는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아니, 샘이 점심 먹는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먹지도 않는 사람이 점심을 준비했어요?"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복잡한 일인지 모르고 덥석 맡아버렸네요:)"
"맛있게 잘 먹었어요. 메뉴선정 최고"
혹시나 음식이 모자랄까 봐, 입맛에 안 맞을까 봐 마음 졸였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는 한 마디에 피곤함이 싹 사라졌다.
뒷정리를 하는데 문득,매일 하루 세끼 차려주던 엄마생각이 났다. 나는어쩌다 한번메뉴정하고 준비하는 것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엄마는 몇십 년간 식구들 세끼 밥 챙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세상 모든 엄마들은 위대하다!
파티 준비가 처음이라 많이 당황하고 신경 쓰였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비록 먹지 않았지만 잘 먹어준 동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