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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Sep 06. 2024

나 때문에 파티를 망쳐버렸다

혼자 모든 걸 도맡아 하려는 이상한 심리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환자를 몰고 오는 사람이 있고 쫓아내는 사람이 있다. 환자를 몰고 다니는 간호사를 업계 용어로 '환타'(환자를 타는 사람)라고 한다. 나는 예상대로 '환타'다. 똑같은 의사와 일을 해도 다른 간호사가 있으면 늘 노쇼가 생기는데 내가 들어가면 미리 짠 것처럼 모든 환자들이 나타난다.

담당하고 있는 엑스트라 듀티 '파티를 준비'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많아야 1년에 두세 번 있던 파티는 내가 파티를 맡은 지난달 이후 벌써 두 번째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미 다음 달에 또 하나가 예정되어 있다. OMG


얼마 전 곧 아이 아빠가 될 동료의 베이비 샤워가 있는 날이었다. 하루 전날 준비를 시작했던 지난 굿바이-웰컴 파티와 달리, 며칠 전부터 쿠팡을 뒤지고 다이소를 왔다 갔다 거리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풍선, 기저귀 케이크, 선물 데코용품 등 파티 이미지를 상상하며 용품을 샀고 파티 전날 모든 택배가 도착했다.

뭔가 부족해 보이는 건 기분탓이야...

도착한 택배와 다이소 파티 용품들을 보며 '오, 한 번 해봤다고 혼자서도 잘하는데?' 라며 뿌듯했다. 하지만 파티 당일, 완벽하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한 파티 준비는 5분도 안 돼서 구멍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희원샘, 가드용 심지 없어요?" "선생님! 케이크는 언제 와요?" "희원샘, 토퍼 없어요?~~ 선생님!...."


'가드가 뭐고 심지는 또 뭐람? 기저귀 케이크가 있는데 또 무슨 케이크가 필요하지?'

블로그 '빵장이'

알고 보니 베이비샤워 파티용 패키지를 사면  안에 풍선부터 심지, 토퍼 등 필요한 대부분의 용품이 들어있어 따로 다이소를 들락날락거리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그리고 기저귀 케이크와 별도로 아기 그림이나 장식이 있는 리얼 케이크가 테이블에 있어야 풍성해 보이고 예쁜 사진이 나오는 한상이 차려진다는  알게 됐다.


해보지도 않은 파티를 상상만으로 준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도와달라는 말을 못 하는 편이다. '아... 혼자는 역부족이다. 도와달라고 못할 거면 차라리 그만 두자. 그런데 왜 나는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까?'

 어렸을 때 "역시 혼자서도 잘하네." 같은 칭찬을 들으면서 무의식 중에 '어른들의 칭찬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생각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러면 칭찬을 받을 수 없다 '라고 귀결된다. 문제는 '칭찬받기에 길들여져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도와달라고 하는 게 흠이 되는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누군가 도와달라고 하면 나는 선입견 없이 기꺼이 도와준다. 오히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나의 쓸모'는 나를 휴먼으로 성숙시키는 동기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휴먼인 것이다.

다음 파티준비는 혼자가 아니라 되도록 다양한 동료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부족한 것이 훨씬 많은 인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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