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되면 먼저 연락드리고 찾아뵙는 유일한 인생멘토가 한 분 있다. 서른이 넘어 간호대학에 편입해 인연을 갖게된 교수님. '선생님'이라면 치를 떨던 내가 스승의 날을 기억하고 챙기게 된 것도 교수님 덕분이었다.
주로 만나자고 조르는 쪽은 당연히 나다. 인생에 크고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제일먼저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먼저 '보자'하고 연락을 주셨다.뭔가 느낌이 싸했다. 직감적으로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교수님, 별일 없으시죠? 마침 다음주 서울에 볼일이 있으니 늘 만나던 카페로 갈게요”
붐비는 카페안에서 교수님을 찾았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정말 별일이 없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희원아”
교수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교수님, 무슨 일 있으시죠? 얼굴이 너무 안 좋아요. 무슨 일이에요?”
"희원아, 수민이가죽었어."
수민은 교수님 아들이다. 직접 만난적은 없지만 교수님 아들이면 친동생이나 마찬가지라 늘 안부를 묻던 수민이. 그가 죽었다고 했다.
교수님을 만난 후 수민의 일은 내 마음에 어떠한 움직임을 일으켰다. '죽음을 마주하고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수민이었다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사실 답을 찾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분명 한가지 생각만 들었을 것이니까, '억울하다. 여태 불안함에 마음 편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죽다니 억울하다'고 말이다.
나는 꽤 공부를 열심히했던 모범생이었다. 여전히 의무교육의 티를 벗지못하고 사회에 잘 맞게 굴러가는 톱니바퀴가 되어 열심히 살고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살아온 인생에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불안하지?'
무엇을 이룰수록 마음의 공허함은 커져만갔다. '다음 목표는 뭐지? 또 뭘 해내야하지?' '계획-수행-노력-결과'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살던 내게 수민의 죽음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안타까움과 황당함, 동시에 허탈감, 무력감이 찾아왔다.
'어떻게 사는게 정답이야?'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한번 살다 결국 죽는다'하는 것 말고 세상에 정답은 없다. 그러니 방법은 한 가지다. 허무히 가버릴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니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하루를 살아가는 것.과거에 발목 잡히지도 말고 ,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답을 내자 더 이상 고민 할 것이 없어졌다. '중요한 일을 끝내면 그 다음에 해야지?' 했던 것들을 바로바로 행하면 될 뿐이다. 면접이 끝나면 가려고 했던 강릉 여행도 미루지 않고 다음달 월급타면 사려고 했던 책도 주문하고.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 뒤로 미뤄놨던 것들을 지금 하면 되는 것이다. 전부 미련과 집착을 놓아버리면 할 수 있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