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세 살의 아들이 부인과 이혼을 하고 치매기가 있는 혼자 살던 아흔넷의 노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아들과 함께 살게 된 노모의 건강상태가 급격히 회복되기 시작했다.노모의 복장이 터져야 마땅한 이 시점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책 '고수들의 질문법'의 저자 한근태 작가는 '노모가 매일 삼시 아들의 밥을 해주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모는 그동안 죽을 날만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아들의 밥을 지어주면서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이유를 다시 발견한 것이다.
얼마 전7개월 만에 다시 만난 환자가 "선생님, 살이 더 빠지신 거 같아요. 다들 여기 일하기 힘들다던데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파트는 병원 내에서도 바쁘고 힘들다고 소문난 곳이다.
나는"에이, 이 정도야 뭐. 전혀 힘들지 않아요."라고 했다.내가 일하는 곳이 다른 부서에 비해 바쁘고 힘든 건 사실이지만'힘들지 않다'라고 느끼는 이유는'일의의미' 때문이다.
나는일을 통해 나의생각과 의식이확장되고사람들과 어울려 지냄으로써 사람답게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을 하는 것은 힘든 노동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고, 보람을 주는 가치 있는 활동이다.
책에서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상은 온통 힘든 일뿐이다. 결혼도, 육아도,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도, 하다못해 밥 먹고 설거지하는 것도 다 힘들다. 우리는 많은 일들을 힘들어한다. 그런데 힘들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힘들다'의 정의는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의 다른 표현이다.
나는 간호대학에 편입하기 전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방황했던 적이 있다. 하필 그때 아버지까지 돌아가셔서 '굳이 살아야 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한편으로 이런 의문이 생겼다. '여태 잘 살다 이제 와서 살지 않을 이유는 또 뭐야?지금까지 나에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였지?'답을 찾으려 행동하면서 다시 삶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한 살 아래 동생이 습관적으로 '지겨워'하는 말을한다. 5년 계약직으로 공공기관에서 근무를 하며 '공무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얼마 전 불합격을 했다며 전화가 왔다. 혼신을 다해 준비했던 동생은 "아우, 진짜 지겹다. 열심히 한 의미가 없네."라며 다시는 시험을 안 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물었다. "진짜 니 인생이 지겹기만 해? 너한테 삶은 어떤 의미가 있어? 네가 다니는 직장은 너한테 어떤 존재야? 일을 하지 않고 살면 어떨 것 같아?"동생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당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야. 너도 한번 잘 생각해 보라고..." 라며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동생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언니가 했던 질문을 가만 생각해 보니까 육아를 하면서 경력이 단절됐을 때 내가 없어진 느낌이었어. 그때 나는 누구 엄마였지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거든.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계약직이지만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생각나더라.다시 준비해서 시험 보려고. 난 일을 해야 살아있는 걸 느끼는 거 같아"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인류의 먼 미래를 이어주고 있기에 인류 역사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사람들이다.(김진명 에세이 '때로는 행복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중) 그러니 의미 있는 당신이 하는 모든 일 역시 의미가 있다. 삶이 힘들 때 자신에게 묻자.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