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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Jul 25. 2019

부치지 않은 편지

아버지께 말을 걸다

7월 한참 더운 중복이 지나면 아버지 기일이 다가온다. 7월 25일 딱 9년 전 오늘이었다. 벌써 9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모든 순간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버지와 나는 TV 드라마에 나오는 화목한 부녀관계는 아니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나에게 칭찬도 꾸지람도 하지 않으셨고 반장이 되든, 학교 성적을 잘 받아오든 한결같이 별말씀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부하직원들의 고충을 잘 들어주는 누구보다 좋은 상사였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퇴근 후 아저씨들과 술 한잔에 얼큰히 취해, 평소에는 대화도 없던 자식들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반복하고 어머니와 자주 다투시던 모습이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존경하고 싶어 한다는데 나는 철들기 전부터 이런 아버지에게 반감이 있었다. 커서 아버지 같은 남자는 절대 만나지 않을 거라 다짐했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처음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아버지와 속내를 나누고 여느 부녀지간처럼 다정하고 싶었는데 기회조차 주지 않은 아버지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도 좋았던 기억보단 서운했던 감정만 남아있는 걸 보면 아직도 어릴 적 쌓였던 응어리가 남아있던 것 같다. 이 감정을 풀어보려고 며칠 동안 '보내지 않는 편지 기법'을 사용해 저널 쓰기를 했다.



죽음으로 끝난 관계에서 보내지 않는 편지 기법은 글쓴이의 슬픔과 애도의 과정이 건전하고 자연스럽게 나가도록 도와주며 가슴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숨 쉬게 한다. <저널 치료, 학지사> 


나의 경우 아버지께 어린 시절부터 서운했던 감정을 털어놓으면서 오히려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관점을 바꿔 아버지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면서 나 역시 내가 원망했던 당신과 너무 닮은 부분이 많아 깜짝 놀랐다. 


어릴 적 나는 공부를 핑계로 방문 닫고 들어가 아버지와의 거리를 두고 지냈다. 어린 동생들이 태어나자 서울로 전학 보내달라고 무거운 가장의 어깨를 더 짓눌렀다. 여느 딸들처럼 아버지 손잡고 맛난 거 사달라는 말도, 아버지 무릎에도 앉아본 적이 없었다. 



애교 없고 무뚝뚝한 게 딱 당신을 닮은 딸이어서 '아버지도 많이 서운했겠다, 내가 큰딸로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무거운 책임을 지고 큰아들이자 가장으로 살았으니 얼마나 삶이 고단했을까'싶었다. 이제야 애처로운 마음이 들고 아버지가 이해되면서 죄송스러움에 한참을 멍하게 아버지 사진을 쳐다봤다.


아버지가 결국 해주고 싶었던, 내가 나에게 스스로 하고 싶었던 그 말은 '사람은 각자 제 몫을 하고 살도록 태어나니 스스로 지고 있는 무게를 내려놓고 니 인생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아버지와 너무도 닮을 나를 보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앞으로의 삶에 반영해 살아가려 한다. 내년 기일에도 아버지께  말을 걸어봐야겠다. 그땐 좀 더 애교스러운 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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