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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Aug 07. 2019

재난영화 '엑시트'

나와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법

오랜만에 유쾌한 재난영화 '엑시트'를 봤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뿌연 안개에서 방독면을 쓰고 뛰쳐나온 젊은이들을 상상하며 현재 청년들의 모습을 구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주인공은 뛰어날 것 없는 취준생이다.


대학 졸업 후 취준생으로 몇 년째 취업에 실패하는 남주인공이 가스테러가 나자 대학 때 배운 클라이밍을 이용해 가족과 사람들을 구한다. 가족은 구했지만 인원 초과로 본인은 헬기에 타지 못하고 대학 클라이밍 동아리 동기 여주인공과 유독가스를 피해 점점 높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영화 보는 내내 눈에 들어온 장면은 유독가스를 피하기 위해 주인공이 쓴 방독면이었다. 방독면은 단 3개, 1개당 10분씩 사용할 수 있다. 남, 여 주인공이 하나씩 나눠 끼고 달려보지만 10분으로는 턱 없이 모자라고 남주인공은 남은 방독면 하나를 가지고 잠시 망설인다. 



주인공은 자신이 새 방독면을 쓰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갔지만 여주인공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남주인공을 원망한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이 남은 새 방독면을 쓴 이유는 지하철역에 있는 비치 방독면을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첫사랑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유독가스가 짙게 깔린 지하도를 뚫고 달린 것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승무원으로 일할 때 산소마스크 착용 시범을 보이던 때가 떠올랐다. 비행기가 추락할 때 천정에서 내려오는 산소마스크 착용은 내가 먼저 마스크를 착용 후 아이에게 착용하도록 안내하는데 어른이 정신을 잃었을 경우 아이가 되려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온전히 정신을 차려야 소중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영화 역시 해피엔딩으로 주인공은 결국 첫사랑도, 가족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을 먼저 보호한다는 게 아직도 익숙지 않고 불편한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어느 겨울, 독감이 의심되는 환자를 상대로 독감 검사를 했다. 검사 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데 환자 앞에서 착용하면 혹여 환자가 자신을 경계한다고 불편해할 것 같아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 


결국 독감에 걸려 일주일간 강제 휴식을 가지며 나도, 다른 환자들도 돌보지 못할 때 비로소 깨달았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9년 전 승무원 교관이 말했다.'위험에 닥치면 네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뛰어들어 승객들을 구해라. 너희가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신속히 대처할수록 많은 승객을 살릴 수 있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제일 우선으로 돌보는 것이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케어기버들에게 말하고 싶다. 


'네가 먼저 자신을 돌보고 다른 사람을 보듬어라. 네가 온전히 보호받을수록 너의 돌봄을 받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돌봄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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