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구독자가 댓글을 남겼다.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간호학과로 편입을 고민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그 질문을 편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말로 받아들였다.
나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편지 한 장 분량의 답변을 남겼다.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 불안해하는 마음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이야기, 완벽하지 않아도 준비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빼곡히 적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구독자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몇 년이 흘렀다. 시간이 꽤 지난 뒤, 그 구독자가 다시 댓글을 남겼다.
“저 기억하세요? 아직 편입 못 했어요. 그때 해볼 걸 너무 후회돼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시간이 더 지나면 같은 이유로 또 후회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구독자는 다시 사라졌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지점에 서 있다.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확신은 없고, 앞으로의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워 결정을 미루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할 위험은 없기 때문에 그 선택이 가장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고민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선택은 더 무거워진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아깝고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고 그래서 또 미루게 된다. 후회는 쌓이지만, 행동은 여전히 시작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이렇게 생각한다.
-내 적성에 딱 맞는 일,
-천직이라는 확신이 드는 일,
-한 번 선택하면 다시 바꿀 필요가 없는 일.
그래서 시작은 점점 어려워지고,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원하는 일에 대한 확신은 대부분 해본 뒤에 생긴다.
-생각했던 만큼 가치가 있는지,
-기대했던 부분이 실제로 충족되는지,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완벽한 답을 찾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작게, 실패해도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경험으로 남길 수 있는 행동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간호학과 편입처럼 직장 병행이 불가능한 선택에서의 '작은 시도’는 공부를 병행하라는 뜻이 아니다. 퇴사하거나 인생을 걸라는 말도 아니다. 커리큘럼과 실습 구조를 정확히 살펴보고 퇴사 후 생활비와 학비를 계산해 보고 이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 가능한 구조인지 현실적으로 확인해 보는 일이다.
이 정도의 시도만으로도 막연했던 고민은 ‘할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감당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바뀐다.
작은 시도를 통해 모호함을 줄여가면 방향이 조금씩 조정된다. 원하는 일은 머릿속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현실을 확인하고, 감당 가능한 범위를 가늠하는 과정 속에서 천천히 윤곽을 드러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몇 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필요한 건 완벽한 선택이나 확신이 아니다.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시도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