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이 들은 뼈 때리는 한마디
일의 반대말이 뭘까? 대개는 여가나 놀이를 떠올린다. 일을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행위'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나 놀이가 아닌 '나태'예요.
-우아한 형제들 '한명수 CCO'
이 문장은 내가 믿어온 일의 문법을 뒤집었다. 나는 그동안 일의 반대말이 단순히 '일하지 않는 상태(무직)'라고 생각했다. 업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만 본 것이다. 하지만 위의 정의대로라면 일의 반대말은 나태다.
소속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자원을 주도적으로 쓰고 있느냐 아니냐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리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다면, 아무리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저 나태한 상태일 뿐이다.
이 뼈 때리는 일의 정의 앞에서 나는 지금의 내 상태를 대입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꼬박꼬박 출근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사실상 나 또한 이 '나태'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 업의 흥미가 다했다고 판단하고 직업을 바꿨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일의 재미가 사라지는 순간을 참지 못해 수시로 자리를 옮겨왔다.
그렇게 내 의지로 일을 선택하고 그만두는 결단력을 가졌기에, 나는 내가 누구보다 '주도권'을 쥐고 사는 사람이라 믿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주도권'이라 답해온 이유다.
하지만 이번에 마주한 정체기는 나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선택의 순간에만 주도적이었을 뿐, 막상 일하는 과정에서는 관성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입사해서 배운 것 이상의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기존 프로세스에 분명한 불편함이 보였음에도 나서서 개선해 보거나 새로운 것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매뉴얼대로 일하다 시간이 흐르면 지루해졌고, 그 지루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주도권'이라는 핑계를 대며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이것은 주도적인 삶이 아니라, 3년마다 찾아오는 슬럼프를 이기지 못해 도망치는 습관에 가까웠다. 이제는 일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주도성을 찾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일의 반대말은 나태'라는 문장은 명확한 기준이 됐다.
여기서 말하는 나태는 주도권을 상실한 채 관성에 몸을 맡겨 내 능력과 자원을 방치하는 것이다. 일을 '참고 견디는 노동'으로 정의하면 일을 안 하는 휴일이 보상이 되지만, 일을 '내가 원해 자발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정의하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모든 순간은 나태가 된다.
결국 매너리즘은 일이 지겨워서가 아니라 일의 주권을 잃었을 때 온다. 기존의 방식을 의심하고, 주어진 매뉴얼을 나만의 효율과 디테일로 재구성하며, 그 결과가 실현되는 것을 확인해 봄으로써 자신의 유능감을 확인하는 것. 나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직업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생산자로서 주도권을 다시 쥐는 것이었다.
주기적으로 슬럼프를 겪으며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면 자문해 보자. 내가 정말 원하는 게 '새로운 일'이 맞는지?그게 아니라면 답은 하나다. 관성대로 사는 나태함을 멈추고 다시 주도권을 쥐는 것. 내가 맡은 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회사가 아니라 나를 위해 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내기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