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미친 내가 물었다
어느 점심시간,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매일 할 일이 빽빽한 나인데, 순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벙쪄버린 것이다. 마침 전화를 건 남자친구에게 "갑자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니,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럼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요. 왜 맨날 뭘 하려고 그래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돼요."
그 말에 나는 당황해서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냐,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멍하니 앉아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묘한 기분이 들었다. 40년 넘게 '성장'이라는 단어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던 모양이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함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왜 나는 이토록 평화를 견디지 못할까. 그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중, 최근 읽은 한 아티클이 떠올랐다. 직장 생활을 20년쯤 하면 아무 일도 없는 안정기가 오는데, 그 상태가 결코 나쁜 게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오히려 관성에 몸을 맡기는 것이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쓰는 효율적인 상태이며, 진짜 큰 도약은 본인의 의지보다 예상치 못한 사건에 의해 '억지로 떠밀릴 때' 일어난다는 통찰이었다. 성장은 사실 고생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제야 한 동료의 모습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는 업무 능력이 탁월하면서도 승진이나 경력 확장에 큰 욕심이 없었다. 언젠가 "나중에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게 저에게 제일 잘 어울려요"라며 웃던 그의 말을 나는 그저 농담으로 흘려들었다. 실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야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적절한 지점에 안착한 것이었다. 나에게 '안주'는 기피해야 할 단어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노력 끝에 도달한 가장 안정적인 상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가만히 두면 잔잔하게 흐를 강물에, 나는 왜 매번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키려 안달복달했을까.
매 순간 껍질을 깨고 나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도약을 꿈꿔야 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아마 나는 또다시 책을 집어 들거나 새로운 할 일을 찾아 분주히 움직일 것이다. 40년을 이어온 나의 관성 역시 쉽게 꺾이지 않을 테니까.
다만 이제는 받아들인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동료의 삶도, 나처럼 매번 돌을 던져 파장을 만드는 삶만큼이나 가치 있다는 것을. 내가 안주라고 치부했던 누군가의 평화는, 사실 그가 일궈낸 최적의 궤도일지도 모른다. 나의 방식이 옳고 그의 방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을 선택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