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살다 이런 아이는 처음 봤다
주일 미사를 보러 성당에 갔다. 대성전으로 들어가려는데, 내 바로 앞에 초등학교 1학년도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딱 한 발 앞서 걷고 있었다. 당연히 그 아이가 문을 열고 쏙 들어가겠거니 생각하며, 뒤따라 문을 밀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아이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내가 오는 것을 감지하더니, 내가 들어갈 때까지 멈춰 서서 문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야말로 '벙쪘다'는 말밖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이런 사려 깊은 배려를 받을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기에, 그 충격은 더 깊고 묵직했다. 몽글몽글한 감동과 어른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이를 따라 들어간 성전에서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이 옆에 앉은 어머니에게 머물렀다. 아는 사람도 아니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지만, 그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교육하고 계신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그 아이의 다정한 손길은 분명 부모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투영이었을 것이다.
때마침 그날 신부님 강론의 핵심 키워드는 '아름답다'였다. 신부님께 한 신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신부님, 미사를 보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남자인 신부님에게 '아름답다'는 표현이 생소했던 것일까, 신부님은 그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셨다고 했다.
"아름의 어원은 ‘나’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은 곧 ‘나답다’라는 뜻이 됩니다."
신부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까 문을 잡아주던 아이의 얼굴이 스쳤다. 그 아이의 배려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꾸민 모습이 아니라, 타인을 돌아보는 마음이 이미 그 아이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나다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다운 선함을 그대로 뿜어내고 있는 아이는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가 이어온 '나 공부'의 정답이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의 속도에 맞추느라 허겁지겁 앞만 보고 달리는 대신,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다정함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찾던 가장 '나다운' 모습이자 아름다운 삶의 태도가 아닐까.
그 아이가 어제의 모습처럼 아름답게 커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갈 수 있도록, 더 따뜻한 세상을 가꾸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