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이런 느낌일까?

내가 사라진 세상을 관찰하며 마주한 의문

by 희원다움

내 꿈은 언제나 '불안'의 기록이었다

나는 꿈을 자주 꾼다. 꿈은 내 무의식이 보내는 가장 솔직한 신호이기도 하다. 주로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학창 시절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지 않아 불안해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재입대 꿈을 꾸듯, 나에게는 성적에 집착하던 시절의 압박감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인생의 중요한 고비를 앞둘 때면 현실이 반영된 꿈을 자주 꿨다. 내 무의식이 그만큼 미래의 결과와 성공에 곤두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에미레이츠 항공사에 합격하기 전에는 비행기를 보았고, 미군 부대 합격 전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 나를 격려해 주셨다.


내가 사라진 세상에서 마주한 것

엊그제는 전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꿈을 꿨다. 내가 죽은 것은 아닌데,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꿈이었다. 영혼이 된 나는 내가 사라진 세상을 그저 관찰하고 있었다. 현실 속 사람들은 나의 생사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했다.

그 안에서 내 시선이 멈춘 곳은 내가 쌓아온 커리어의 결과물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던 갈망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직 나를 찾아 미친 듯이 온 동네를 헤매는 남자친구의 뒷모습만 보였다. 절망에 빠져 나를 찾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꿈속에서 엉엉 울다가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묘한 기분과 함께 한 가지 의문이 나를 덮쳤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머리로 이해했지만 와닿지는 않았던 것들

흔히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더 보내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말한다. 사실 머리로 이해했지만 와닿지는 않았다. 당장 눈앞의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했고, 더 높은 성취만이 나를 증명해 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에서 본 풍경은 달랐다. 내가 사라진 세상에서 나를 증명해 주던 조건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의 슬픔만이 실체로 남았다. 사랑하는 사람 이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균형 있는 삶'은 어떻게 사는 걸까?

요즘 한참 새로운 주제에 꽂혀 정신없이 파고들던 차였다. 무언가에 몰입하면 주변을 돌보지 못하는 내 성향상, 성취를 향해 달리는 동안 지금 누려야 할 평범한 일상들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꿈에서 깨어 삶의 균형을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노력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정작 무엇을 방치하고 있는지는 잊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