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원다움 Mar 15. 2023

퇴근 10분 전, 환자가 왔다

끝났어요!

4시 50분, 주섬주섬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프론트 데스크에서 전화가 왔다. 퇴근 10분 전이라 찜찜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희원샘, 환자가 혈압재야된다고 종이 들고 왔어요. 앞으로 나와주세요!


네? 지금..요?
.....


아오... 이미 나간 사람들도 있는데 참 복도 많지. 역시 나는 환타야. '환타'는 간호사들이 쓰는 용어로 특정 간호사가 근무할 때만 환자가 몰리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를 탄다'해서 그런 사람을 환타라고 부른다.


난 환타였다. 지금도 그렇다. 다른 동료가 맡은 날은 와야 하는 환자도 노쇼(no show)인데 같은 의사를 내가 맡으면 안 와도 되는 환자들까지 와서 퇴근시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는 날들이 생긴다.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뭘 해도 나만 는 날.


마음을 가라앉히며 환자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니? 내가 퇴근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속마음은 '일찍 오던지 내일오던지 했어야지...')


내 마음이 전달됐는지, 그도 대차게 얘기했다. '나도 일찍 전달받았음 일찍 왔겠지! 지금 이야기 들었다고!'


...'음... 좀 미안한걸? 친절하게 다시 묻자'


'가족력 있니? 전에도 이런 적 있어?
머리는 안 아파? 우리 엄마도 어제 너처럼 혈압이 높으셔서 피검사까지 하고 오셨어..
잘 왔어, 이제 좀 진정됐으니 혈압 잴게'



왼팔, 오른팔, 다시 왼팔 시간 간격을 주고 3번을 측정했더니 퇴근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환자도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
내일은 꼭 일찍 올게


그래, 조심히 가고 내일 봐


다음날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른해질 때쯤 그가 찾아왔다. 한번 봤다고 다시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오늘은 일찍 왔지? 일찍 퇴근하라고



(머쓱)

군대를 나갈 거라는 환자에게 행운을 빌어줬다. 새로운 곳에서는 건강관리 잘하길!


마침 혈압이 높았던 엄마도 약 대신 식이조절과 운동으로 지켜보자고 했다고. 엄마 혈압이 내내 신경 쓰였는데 진작 내 환자도 엄마처럼 생각할걸.


처음 간호학과에 입학할 때,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내 환자들을 아버지처럼 돌보자 다짐했는데, 어느새 퇴근시간에 연연하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또 잊혀버릴지 모르지만 기억하자!

내 가족도 누군가에게 돌봄 받는 환자가 된다는 것. 내가 만나는 환자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이야기) 전화할 때 미소를 지으면 생기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