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욕망
짙은 남색이 하늘을 물들이고 하얗고 연약한 눈이 하늘에선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클래식한 19세기 유럽 길거리에서나 볼 법한 가스등만이 이 길에 놓여있었고 사람 한 점도 없었다. 그때 골목길에서 한 남자가 갈색 버버리코트를 싸매며 웅크린 채 카페 문을 열었다. 가게 사장은 잔을 닦고 있다가 멈춘 채 남자를 향해 옅은 미소를 내보인다. 남자는 시린 기운을 뒤로한 채 사장의 미소에 웃어 보이며 목만 숙여 인사를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쌉싸름한 원두의 향과 이 겨울을 닮은 듯한 피아노 소리가 남자의 귀에 내리 앉는다. 남자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킨 뒤 일인용 가죽소파에 털썩 주져 앉는다. 사실 남자는 에스프레소를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빨간 입술사이로 넘어가는 에스프레소를 보고 맛이 궁금했던 참에 그녀와 함께 갔던 카페를 발견하고 들린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가 신고 있는 빨간 구두만큼이나 남자에게 날카로웠고 이 시린 계절만큼이나 남자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남자는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을 넘어서 그녀도 알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까지도. 그러나 그 마음에도 그녀가 가진 습관에도 남자는 남자 자신이 없을 거란걸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알고 싶다는 건 남자의 욕심이었다. 남자가 그녀를 생각하는 사이 따뜻한 에스프레소를 쟁반에 받쳐 들고 오는 사장의 발걸음을 듣고 뒤로 눕히고 있던 상체를 일으켜 그를 마중한다. 사장이 가고 난 뒤 남자는 탁자에 놓인 에스프레소 한 잔을 물끄러미 본다. 오늘 아침에 깎지 않고 나온 털이 그대로인 자신이 에스프레소 잔에 비춰 보인다. 짧은 시간 동안 고압으로 추출된 커피의 강한 쓴맛 사이로 풍푸한 아로마향이 코를 따뜻하게 해 준다. 짧지만 강렬한 여운이 감돌며 혀에 남아있는 에스프레소를 마저 음미해 본다. 그리고 옆 창문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