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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한없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한없이 세상이 무서워지기도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응답하라 1988 인물 중 한 명인 정환이는 덕선이에게 커서 고백을 한다. 내 신경은 온통 너였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의 한 행동에 나의 하루 기분이 결정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이 한 말에 온 정신이 쏠려 나의 하루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이 그 사람을 향해 나의 신경이 곤두세워져 나타난 현상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언제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해줄까를 생각하게 만들고 언제까지 나를 사랑해 줄까를 묻게 되는 것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연애 그 앞의 불안이 뒤섞이고 끌어안아서 지금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고치지 못할 불안을 안고 나아가야 하는 것.
사랑은 여러 가지의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가 계속해서 서점에 가 비슷한 방식으로 맺는 로맨스 소설을 사는 이유도, 길거리에 들리는, 비슷한 결말로 끝나는 사랑 유행가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사랑이 보편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뿐인 형태를 만들 수밖에 없는 사랑의 특징 때문은 아닐까?- 서로 다른 타인이 만나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으로 - 그러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결국 그 어떠한 행복한 사랑도 조금의 슬픔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대는 결코 내가 아니니, 나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그럼에도 사랑을 한다. 당당하게 이 사랑을 쟁취할 거라고 선언을 하면서 시작하기도 하고 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임을 알면서도 이 사랑을 시작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너를 사랑한다 는 문장은 틀린 문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사랑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능동적인 주어적 주체라기보단 이 사랑을 적극적으로 밀어낸, 이 사랑에 있어 피해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사랑을 시작하면 이런 예감과 함께 시작한다. 너의 이름을 조용히 부를 날이 많아지겠다는 예감과 함께. 그리고 사랑이 끝날 때쯤엔 나의 이름을 단 한 번만이라도 불러주면 안 되겠냐는 말로 끝이 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이름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 사람이 그 이름을 가지지 않았어도 그 사람을 좋아할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름은 나태주시인이 말한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