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숲, 붕붕이처럼.....
한 달 내내 벼르던 동네 뒷산.
오늘은 정말 큰맘 먹고 다녀왔다.
새벽 4시 30분, 잠에서 깨자마자 반려견과 함께 길을 나섰다.
걷던 길에서 키다리 달맞이꽃을 발견했다.
킁킁, 향기를 맡으니 달큼한 내음이 기분 좋게 퍼졌다.
꼬마자동차 붕붕처럼 “힘이 막 솟아나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왠지 붕붕이를 닮은 사람 같다.
가볍고 씩씩하게, 숲을 향해 바지런히 걸었다.
사실, 여기까지 나오기까지가 제일 힘들었다.
몸이 말을 안 듣는 건지, 마음이 안 따라주는 건지...
하지만 막상 밖에 나오니 어느새 씩씩한 내가 되어 있었다.
오늘 일출 시각은 5시 35분.
산에 도착한 건 5시쯤.
하늘엔 아직 어스름이 남아 있었지만,
곧 밝아질 걸 알기에 걱정은 없었다.
입구에서 커다란 부용꽃을 발견했다.
아니, 부용꽃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 반가워해 주는 느낌이다.
''어이, 거기 나 좀 보고 가지.''
넉넉한 큰 머리 부용꽃의 입담이 들리는 듯 하다.
잠깐 걷다 보니 벤치가 나왔고, 그곳에서 맨발 걷기 양말로 갈아 신었다.
이게 살짝 귀찮긴 하지만, 나에겐 자외선 알레르기가 있다.
특히 발이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더 조심해야 한다.
발이
"나 좀 잘 챙겨줘!" 하는 항의 같다.
오랜만에 하는 맨발 걷기, 좋았다.
요즘 계속되는 더위 덕에 이른 아침에도 시원한 기운은 적었지만
숲이 주는 숨결은 그 자체로 위로였다.
‘역시 오길 잘했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에게 “잘했어. 잘했어.”
두 번이나 칭찬해 줬다. 헤헤.
나는 지금 미션 수행 중.
미션명: 자외선 피해 아침 숲을 다녀와 작전!
6시 전엔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늦어도 6시 10분까진 도착해야 자외선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이때부터 갑자기 머릿속이 ‘알파고 모드’가 되어 계산을 시작했다.
아스팔트 걷는 시간이 왕복 40분.
산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단 20분.
계산이 끝나자마자 냉정하게 돌아섰다.
조금만 더 가면 쉴 수 있는 또 다른 벤치가 나올 텐데…
하지만 나는 지금 작전을 수행하는 사령관!
지체는 금물. 태양이 곧 고개를 들 테니까.
그리고 결과는…
성공!
6시 5분,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산 너머 키다리 나무 사이로 붉게 떠오르는 해가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늘의 미션 클리어.
작전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집 앞 공원 정자에 잠시 앉았다.
정자 지붕과 커다란 나뭇잎들이 하늘을 가려줘
그곳은 나만의 작은 쉼터가 된다.
태양을 만나기엔 딱 좋은 그늘.
짧지만 강렬한 만남은 마치 견우와 직녀 같다.
매일 그곳에서 희망을 만나고, 마음을 풀어낸다.
집에 돌아오니 배꼽시계 밥 달랜다.
몸이 좋아하는 식사를 준비해서 기분 좋게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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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불속으로 풍덩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오늘은 열정과 무기력 사이에서 흔들리던 날들.
그 사이에서
숲에 가기 미션 성공한 것만으로도
내게 축하를 보낸다.
잘했어, 잘했어.
또 한 번, 두 번, 폭풍 칭찬

[ 모든 사진 : 온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