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확신이 흔들리던 시절, 그 안에서 결국 나를 만나게 된 이야기
연애는 나의 거울이었다.
그리고 상처는 나를 성숙하게 만든 조각이었다.
스펙보다 나를 먼저 사랑하기까지
대치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학벌과 직장은 곧 사람의 가치처럼 여겨지는 동네
그 속에서 수능을 실패하고, 원치 않던 대학에 진학한 나에겐
‘학력’은 늘 감추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살았지만 내 안의 명문대 학력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일까,
연애 상대는 늘 ‘명문대 출신’이었다.
그들과의 연애는 내가 가진 결핍을 감추기 위한 방패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은 나보다 뛰어난 스펙을 가졌지만,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벌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스펙은 노력의 결과이지,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내가 애써 숨기려 했던 나의 배경은 결국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흔적이었다.
자기 확신이 흔들리던 20대, 그때의 나
나는 어릴적부터 내 마음이 납득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일관된 나의 본성이다.
‘원해서 시작한 일’
‘감정이 교류되는 관계’
이런 환경에서 나는 오래 버티고, 즐겁게 일했다.
이러한 성향은 연애에서도 그랬다.
선택했으면 끝을 보는 성격,
한 번 시작하면 진심을 다했다.
그런데 20대 후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가장 약해졌던 시기였다.
그 무렵 만난 연애 속에서 나는 자주 흔들렸다.
나보다 몇 살 많은 그들의 말은
때로 조언이었지만, 칼날이 되어 나를 아프게했다.
그 말들이 내 안의 확신을 무너뜨렸다.
결국 나는, 사랑 안에서도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었다.
나는 그 시기, 스스로의 선택에 확신이 없던 사람이었다.
사랑은 말보다 행동이라는 걸, 부모님의 가르침
경상도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표현은 서툴렀지만, 사랑만은 누구보다 깊고 진심이었다.
내가 아플 때, 내가 기쁠 때
언제나 가장 먼저 속상해하고 가장 크게 기뻐하셨다.
어릴 땐 몰랐다.
아프다 하면 “병원에 안가고 왜 그랬냐”며 타박하던 그 말들이
사실은 걱정과 사랑이었다는 걸
그게 사랑인걸 몰랐기에, 나는 자꾸만 다정한 말에 끌렸다.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가
가족의 품보다 더 따뜻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연애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말보다 더 진한 건 행동이었다.
말은 다정하지 못해도 늘 묵묵히 옆에 있어주던 부모님의 사랑이
그 무엇보다 진심이었다는 걸, 몇번의 가슴 아픈 연애를 거치고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가장 가까이에서 깊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 덕분일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순간, 사랑을 끝낼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지금 나는 스스로가 더 단단해지기 위해,
나를 지키며 예쁜 사랑을 하기 위해,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 종종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토닥여주며 한걸음씩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