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호사엄마다. 워킹맘 중 최악이라는 3교대 간호사, 그중에서도 최근에 경력단절에서 경력이음을 이룬 워킹맘. 그것이 나의 직업이다.
희미한 기억 속 어느 신문사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연애 상대자로는 1위라지만 결혼 상대자로는 뒤에서 1위라고 한다. 너무나 웃픈 직업을 가졌는데 그 이유는 3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냥 3교대 근무를 한다는 점도 별로인데, 3교대 근무 중에서 유독 간호사라는 직업이 악명 높은 이유는 규칙적이지 않은 3교대라는 점이다. 한 달 중에 교대 근무가 반복되는 규칙적인 3교대 근무의 직업들이 많지만, 간호사라는 직업의 근무는 불규칙한 교대 근무로 한 달의 시간을 널을 뛴다. 오늘은 새벽 7시에 출근하는 데이 근무를 하다가, 내일은 저녁 9시에 출근을 하는 밤 근무를 하는 식이고, 남들 다 일하는 평일에는 쉬다가 남들 다 쉬는 주말과 공휴일에는 출근을 한다.
간호사의 3교대 근무는 데이, 이브닝,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하루의 시간으로 나뉘는 근무 단위로 이루어진다. 병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우리 병원은 데이 근무는 아침 7시부터 3시까지, 이브닝 근무는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나이트 근무는 오후 9시부터 아침 8시까지로 이루어진다.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근무를 하게 된다.
초등 아이가 물어본다. 아빠는 쉬는데 엄마는 왜 어린이날에 출근을 하냐고. 아픈 환자들이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입원환자는 집에도 안 가고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그래서 엄마가 출근을 하는 거라고 하면 아이는 수긍하면서 끝내 출근하는 나를 붙잡지 못한다.
병원의 간호사뿐 아니라 은근히 많은 직업이 교대 근무로 이루어진다. 경찰관, 소방관, 공업단지의 직원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은근히 나의 배우자는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 교대근무이다.
배우자가 불규칙 3교대의 직업을 가졌다면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는 것보다 감수해야 하는 상황들이 더 많아진다. 더군다나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더욱더 말이다. 최소 절반의 육아와 살림은 배우자에게 고스란히 넘어가는 상황이니 흔쾌히 이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하필이면 어린이날에 근무하러 가는 엄마만 빼고 수목원에 나들이 가는 아이들의 아쉬움 섞인 목소리, 명절에 밤 근무를 하여 시댁에서 6시간째 낮잠을 자고 있는 대책 없는 며느리를 깨우기 머뭇거리는 시어머니, 김장날에 딱 맞추어서 같이 일하는 동료의 근무 펑크 소식에 일하러 간다며 자리를 비우는 얄미운 동서를 대놓고 욕하기 힘든 형님, 기분 좋은 날에 갑자기 번개로 잡힌 부부동반 모임에 덩그러니 혼자서 참석해야 하는 민망한 남편의 웃음소리, 근무표를 알지 못 한 채 약속을 잡지 못해 계속해서 틀어지는 친구들과의 약속과 근무 중이라 받지 못한 통화와 문자, 1이 지워지지 않는 카톡 글들…
뭐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게 많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을 예상하기 힘든 상황에 다음 달의 근무표는 나왔고 나는 그 근무표 대로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불규칙 3교대가 좋은 점도 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근무 신청을 미리 받는다. 매달 22일쯤 근무 신청을 받고 23일에는 다음 달 근무표가 나온다. 다음 달 근무표가 일주일 전에는 예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간호사의 근무가 불규칙적인 데에는 내가 원하는 날에 원하는 근무를 할 수 도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번 달에 나는 몇 번의 근무를 신청을 했다. 4일은 1호 학교 재량 휴업일로 오프, 19일은 지인 결혼식 참석으로 오프, 25일은 2호 학부모 참관 수업으로 이브닝 근무 신청, 26일은 친정식구 모임으로 오프를 신청했다. 이 말인 즉 다른 간호사들과 근무 신청이 너무 많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근무를 모조리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달 중 며칠은 약간 선택근무제의 느낌도 있다. 모든 쉬고 싶은 날에 굳이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학부모 참관 수업은 보통 오전에 거의 다 이루어져서 휴가를 내는 대신에 이브닝 근무를 신청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조금 피곤하다는 점만 감안을 한다면 나는 휴가를 내지 않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니 이 얼마나 좋은 시스템인가 말이다.
몇 개의 근무 신청이 이루어지고 나머지 요일은 어떻게 될까? 그건 근무표를 짜는 수간호사의 재량에 따라서 데이, 이브닝, 나이트 근무가 섞이게 된다. 모든 요일의 근무를 내 마음대로 다 짤 수는 없으니 정말로 꼭 필요한 날의 근무신청만을 받는다. 좋은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다. 그래서 근무신청을 하고서 다음 날 나올 근무표를 손꼽아 기다린다.
나는 임신 육아로 인해서 일을 쉬게 된 흔해빠진 경력단절 간호사였다. 시간이 흘러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 마주쳤을 때 나의 고민은 2가지였다.
고민 하나는 기존에 하던 간호사 일을 할지, 아니면 다른 직업을 찾아볼지. 이왕 돈을 벌기로 했다면 새로운 일을 다시 배워서 신규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간호사라는 경력을 살리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유리하고 가장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요즘은 경력직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더라. 그리고 40대라는 나이는 너무 많은 것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오래 다닐 경력직이라며 환영을 받았다. 첫 직장은 쉽게도 그만두지만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은 간절하고 웬만하면 오래 다닌다는 것을 병원은 잘 아는 눈치였다.
또 다른 고민은 나를 너무 많이 망설이게 했다. 간호사로 근무를 할 거면 3교대 간호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일반 회사원처럼 근무를 하는 상근직을 선택할 것인지이다. 나의 선택은 비록 나이트 근무가 힘이 들고 피곤지만 3교대 근무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3교대 근무를 했을 경우의 장점이 더 컸기 때문이다. 물론 3교대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나이트 근무를 하면 밤근무 수당을 더 주고, 평일에 휴가를 내기가 더 용이하기에 나는 불규칙 3교대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글을 빌어서 내 배우자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표한다.
여보~ 내가 3교대 근무를 선택한 데에는 당신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어. 내가 전업주부로 있으면서 살림을 오래 했는데 사실 나 살림이 너무 적성에 안 맞고, 재미없거든. 나 경력직 주부인데도 말이야. 이제부터는 신규인 자기가 집안일 좀 나눠하면서 경력을 좀 쌓았으면 좋겠어. 내 3교대 근무는 자기에게 주는 살림과 육아의 기회라고 생각하도록 해~ 뭐든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더라고, 잘할 거야. 자기~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