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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명한 사람, 개명하고 싶은 사람

89일 차 선자가 어때서

by 소곤소곤


나의 이름은 전선자다. 이모의 딸 들은 정귀복, 정귀님이다. (아직 이들에게 이름을 써도 되는지 묻지를 못했다. 만약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된다면 허락을 해줘요~^^)


우리 셋의 공통점이라고는 외가댁의 손녀들이라는 것뿐인 줄 알았다. 숨겨진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40년을 넘게 알고 지낸 피붙이들의 마음을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의 독자분들이라면 내가 개명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이다.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지어주시고 가신 이름. 나에게는 이름이 남겨졌고, 거의 한평생을 아쉬움에 살고 있다. 너무나 독특한 촌스러운 이름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만족감이 거의 없었다.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많이 말을 하지는 않고 살았고, 우리네 사는 동안에는 개명이 흔하지 않기에 지금껏 그저 그렇게 지내왔는데. 저번 주에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정말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사건의 발단은 장례식장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요즘 장례식장에 가면 화면에 고인의 사진과 함께 상주와 가족들의 이름이 나열된 화면을 마주하게 된다. 물론 외손녀인 나의 이름도 금방 찾을 수가 있었다. 찬찬히 일어보는데 모르는 이름이 있었다. 손녀의 이름에 '나지유'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손녀가 하나뿐인데 얘는 누구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이의 이름이 떡 하니 적혀 있었다. 뭔가 잘못된 건가? 손녀라면 하나뿐인 외삼촌의 친딸이라는 건데, 내 사촌동생은 이름이 '나인교'란 말이지. 남편에게 이거 어떻게 된 걸까 이야기를 했다. 착오가 없다면 그 이름은 어찌 되었건 외삼촌의 딸이 맞을 거라고 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외삼촌에게 다른 가정사가 있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한 나니까. 복잡한 가정사가 없다면 나의 추측으로는 개명뿐이다. 내 조카가 개명을 한 것으로 나름 혼자서 결론을 낸 채로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다행히 나의 조카인교는 장례식장에서 음식 서빙을 하고 있었다. 밀어닥치는 궁금증을 뒤로하고 나는 장례절차에 따라 환복을 하고 슬픔의 시간을 갖었다.




손님들이 휘몰아치고 간 후 어둑하니 칠흑 같은 어둠이 다가왔다. 이제 진정으로 가족들만 남는 시간이 주어졌다. 옹기종기 끼리끼리 모여졌다. 외할머니는 이모할머니와 딸들의 곁에 모였고, 남자 어른들은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내 또래의 사촌들도 끼리끼리 모여 앉았다. 잊고 있던 이름이 궁금했다.


인교야 너 개명했니? 나지유가 너야?
저번에 학생 때 개명 했어.


그렇구나. 개명한 것이 맞는구나. 개명에 관심 있던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개명을 하면 불편한 것이 많다는데 너는 어떤지, 사람들은 개명한 이름으로 너를 불러주는지, 어색하지는 않은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개명을 하려거든 학생 시절에 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휴대전화 가입, 통장 개설, 각종 동사무소 서류와 여권 재발급 그리고 각종 모든 이름이 들어가는 서류에 개명을 했다는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는 사실이 많이 불편하다고 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다 감수하고서라도 개명을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번에 안 사실인데 나만 개명을 고민하는 줄 알았는데 사촌 둘도 개명을 고심한다는 사실에 동지애가 느껴졌다. 내가 먼저 선방을 날렸다.


선자가 뭐야. 지금은 이름에 '자'라는 글자 잘 안 넣잖아. 내 친구들 중에 '자' 들어간 애는 하나도 없어. 우리 엄마들 세대에나 있는 이름이잖아. 그리고 남동생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지겨워.
선자가 어때서, 귀복이 보다는 낫잖아.


갑자기 한 방 먹은 듯했다. 사람은 다들 자기중심적이라고 했던가. 어릴 적 같이 놀던 사촌들과 지낼 때 내 이름은 촌스럽고 안 예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은 내 일이 아니니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언니도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귀하다는 뜻으로 '귀'자가 들어갔다는데, 자매가 같이 '귀'라는 글자가 들어갔다. 아무리 눈과 귀를 씻고 찾아봐도 내 주위에도 '귀'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엄마 세대에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내가 표정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을 귀님이 동생이 알아차리고 한 마디를 거든다.


"선자가 어때서. 우리보다는 괜찮지?"

아니라고는 못해서 미안해. 이게 바로 상대적으로 행복하다는 건가 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정말로 남의 인생에 관심이 없구나.

일단 개명은 좀 더 생각해 보는 걸로 해야겠다.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내 이름을 너무 소중하지 않게 다뤘던 것은 아닐까? 아~ 나 왜 이러니?

머릿속에 어지러워 혼란 속에 빠지는 것 같다.


누가 나 좀 도와주세요. 시간 나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처음으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글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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