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햇살이 따사로운 겨울날. 나를 포함한 직장동료 3명이 뜨끈한 감자탕을 먹고 있었다. 먹으면서도 쉼 없이 생각은 굴러가니, 오늘의 대화화두는 집안일.
나는 최대한 집안일을 안 하고 싶어서 소위 장비빨이라는 살림템을 구매하곤 한다. 식기세척기와 건조기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A동료는 살림만 하는 게 꿈이지만 계속 직장을 다녀야 할 것 같단다. 헐~ 살림만 하는 것이 꿈이라는 A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만 쉬어본 워커홀릭 직장맘이다. 본인이 본인을 잘 모르나 본데,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일하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나는 지금 일하는 나에 꽤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원거리라는 이유로 결혼하면서 대학병원을 그만두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정규직장을 다니는 것보다는 육아에 전념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시간강사로 파트타임을 할 뿐이었다.
이제는 둘 다 사춘기가 되어버린 1호와 2호가 자기들 먹을 것을 챙겨 먹고, 나의 손길을 덜 필요로 하기에 3교대라는 파격적인 선택까지 가능했다. 비록 3교대여서 주말, 명절에도 근무를 하는 나여서 아쉬움이 많지만, 평일에 쉬는 날이 많으니 아이들의 학교행사에 빠짐없이 가고 있다. 가끔씩 등교를 같이 해주면 아이들의 만족도가 하늘을 찌른다. 매일 잘해주는 것보다 가끔 한 번씩 잘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무래도 둘이 버니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 학원 하나 더 보낼 수 있고, 외식도 더 자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남편의 살림 기여도가 높아졌다는 거다. 계속 전업주부였다면 목격할 수 없었을 남편의 놀라운 살림솜씨레 많이 놀라고 있다. 역시 요즘 나오는 반조리식품은 완성도가 훌륭하다.
직장맘이 되고 달라진 것은 집에만 있는 사람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기나긴 시간 동안 우울증을 앓았었던 내가 활력을 찾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 하겠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억울함과 분노, 울음 같은 것이 찾아와서 남편에게 쏟아내었었는데 이제는 우울증에 걸릴 시간조차 없다. 하루하루 살아내어 가기에도 시간은 빠듯하니. 나의 자존감 상승으로 이제는 글쓰기까지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집은 정신이 없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읽다 만 책과 건조기에서 꺼냈지만 아직 접지 않은 빨래 무더기, 놀다가 정리를 안 한 아이들의 장난감들이 굴려재낀다. 청소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나의 글 상태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길 기다려 본다. 뭐든 발전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믿는다.
오늘도 쓴다. 내일도 쓸 거다. 매일 쓰다 보면 뭔가가 보일 것이다.
그날까지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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